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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Feb 23. 2022

MV '시간의 종말'이 내게 남긴 것들

굿바이 종말!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그 마지막 파수꾼은 예술가일 것이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1962)


마지막 매거진을 쓰는 오늘까지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무슨 정신으로 시작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 날 운명처럼 성큼 다가온 메시앙의 걸작에 홀린 듯 사로잡혔고 때마침 환경이 열렸다. 멘토인 작곡가 류재준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만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이 글은 '그때'를 갑자기 만나 허우적대며 달려온 지난날의 나를 위한 위로의 글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겁도 없이 시작해 밤마다 끅끅 울던 나를 돌이켜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서툴기 그지없었던 지난 시간들, 이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녹음 과정에서 잡힌 이상한 잡음들은 애교였다. 에필로그 '검은 티티새'를 믹싱 하던 중 갑자기 녹음실 불빛이 음악에 맞춰 깜박대거나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편집실에서도 업로드 중 난데없이 끊기거나 이유 없이 랜더링에 실패하기도 했다. 가장 황당했던 일은 유튜브에서 3번 트랙 '새들의 심연'을 파리 오페라 수석 클라리네티스트의 음원으로 오해해 저작권 침해를 걸어 영상이 업로드 되자마자 블락이 걸린 것이었다. 일주일의 항소 끝에 다행히 잘 해결되었지만 저장된 것들이 날아갈 수도 있던 위험한 상황과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로 잠을 이룰 수 없던 날들이었다.


에필로그 '검은 티티새'에 맞춰 깜박이던 불빛, 음악을 멈추면 불빛도 같이 멈추던 미스터리의 현장


종말의 여파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반납한 채 편집실에서 밤을 새우고 마지막으로 업로드를 확인한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8개월 동안 지고 있던 종말의 짐을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작품에서 빠져나오는데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몸무게가 4kg 줄어들었고 이유 없이 계속 아팠다. 심장이 두근거려 네 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었고 입맛도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병원에 가보니 자율신경 조율 이상증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2월이 되었다.


놀라운 성장의 시간

MV '시간의 종말'이 내게 남긴 것은 '성장과 안목'이었다. 2월이 되고 올해 계획된 프로젝트의 악보를 펼쳤을 때, 깜짝 놀랐다. 음악이 아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구조, 화성, 전개 등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작곡가의 의도가 이전보다 뚜렷하게 보였다. 한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오래 품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해져 있던 것이다.  




작품의 위대함   

한 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걸 누가 봐?'였다. 애초에 대중성을 겨냥하고 만든 작품이 아니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난, 요한계시록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서른 초반의 현대 음악 작곡가의 작품은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19의 시대상을 이 음악을 통해 기록하고 싶었고 이왕 하는 거라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를 만나 운명처럼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상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더 이상 내 몫이 아니었다.


고마운 사람들

녹음과 촬영 그리고 편집을 거쳐 뮤비가 탄생하기까지 총 27명의 동료가 함께했다. 이 중 코로나19 피해자가 발생해 일정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을 향한 열정만큼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었다. 지칠 때마다 격려해준 연주자들, 난해한 작품을 기꺼이 함께해 준 현감독과 조명, 소품, CG, 촬영팀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밤 9시마다 기도로 함께 동행해주신 청담선교센터 34인의 중보기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프로젝트는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메시앙이 바라봤던 요한계시록에 새겨진 사랑, 예수의 사랑의 힘으로 왔다고 말하고 싶다. 절망적인 순간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사랑,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사랑,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어주는 사랑, 그 모든 힘은 결코 내 것이 아니었다.


이 글로 지난 10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그저 이 메시지의 전달자였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매일 아침마다 읽는 박노해의 글 중 오늘 이런 글귀가 있었다. '고생, 고(苦)는 생(生)이다, 고통 속에 무언가 탄생하고 있다'


그렇다. MV '시간의 종말'이 내게 가져다준 가장 큰 자산은 '기꺼이 이 길을 걷는 용기'다. 코로나19로 흔들리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은 이제 내 음악을 통해 무엇을 외쳐야 할지에 대한 확신으로 발전했다. 허락된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주어진 시간만큼은 음악에 진심이고 싶은 마음, 이것만으로도 넘치도록 감사하다.



고마웠어, '시간의 종말' 이제 정말 안녕! Good Bye :)

 

https://youtu.be/NsyRqH3 S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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