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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ul 06. 2023

내게도 '묻지 마 폭행'이 일어날 줄이야...

그리고 Lament

뉴스에서나 보던 '묻지 마 폭행'이 실제로 내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현재 이끌고 있는 앙상블의 자선음악회 날이었고 그 공연을 보러 온 지인을 택시로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갑자기 한 젊은 남자가 성큼 다가와서는 갑자기 주먹으로 내 왼쪽뺨을 때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갔다. 혼자 맞서는 건 위험할 것 같아 마침 뒤풀이에 함께 있던 지인들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범인은 멀리 가지 않았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범행을 인정했다. 너무 궁금해서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여자가 웃고 있는 게 꼴 보기 싫어서요... 그리고 전 내일 죽어도 상관없어요."


왼쪽 턱이 얼얼한 중에도 그의 말이 맘에 걸렸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싶었다. 그래서 죽지는 말라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어차피 경찰을 통해 법적인 절차를 따를 터였다. 2차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왼쪽 얼굴이 부어오르면서 참기 힘든 이명이 시작됐다. 도저히 머리와 귀가 울려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무조건적인 휴식을 권했다.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안타까움은커녕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혼자 당한 여성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 청년에게 맞은 여성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억울했고 이런 사회의 현실이 사무치게 싫고 또 슬펐다.


몸과 마음의 충격이 컸지만 더는 연습을 쉴 수 없어 이명을 무시하기로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프로코피예프 전쟁 소나타를 펼쳤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담은 전쟁 소나타들을 천천히 보는데 감정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꾹꾹 참았던 눈물을 오랫동안 쏟아냈다. 'No War'를 외치며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들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던 나는 인류애를 완전히 상실한 사회혐오자가 되어있었다. 사건 당시 죽지는 말라며 청년에게 손을 내민 나 자신도, 원수를 사랑하라던 예수님도 미워졌다.


그 이후로 며칠을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른 흙에서 작은 초록 싹이 올라와 조용히 자라는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게 된 어느 날 깨달았다. 돌아보니 딱 내가 쏟아낸 눈물만큼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제야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일을 겪었을 전쟁의 희생자들, 사회 범죄의 피해자들은 얼마나 더한 고통을 겪었을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던 혈기가 겸허함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저 혼란만을 남기는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애통할 때 조금씩 치유된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그렇게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리사이틀은 'Lament(애가)'로 변경되었고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공연 이후로도 마음을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에서야 후기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리사이틀 Lament 프로그램 북 마지막 페이지에 담은 이 성경 구절은 그날 연주한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위로의 마음이다. 상처 앞에 무기력해지는 대신 눈물로 옷자락을 적시며 애통하는 자들을 하늘은 결코 외면하지 않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다소 거칠고 듣기 힘든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듣는 이들의 숨은 분노와 상처를 양지로 끌어내고 마음껏 애통할 수 있기를, 류재준 선생님의 위촉곡 'Lament'가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이 날의 현장을 정성스럽게 담아주신 한경 Arte TV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가람 피아노 리사이틀 <Lament>

https://youtu.be/Dm7 Wv3 sjE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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