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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Mar 27. 2021

조쉬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의 <언컷 젬스>

우리는 모두 끝이 있는 존재라는 점에 관하여.

영화 <언컷 젬스>를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프디 형제의 연출


형 조쉬 사프디와 동생 베니 사프디

2017년 제작된  <굿타임 (2017)> 그리고 2019년 <언컷 젬스 (2019)>까지, 사프디 형제는 여태 흔히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영화를 보여준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숏들,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들, 보는 사람까지 산만해지게 만드는 카메라 무빙과 음악까지, 이들의 연출 방식은 나에게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무엇이 이들의 영화를 다르게 만들었고, 인상 깊게 만들었을까?


<굿타임>과 <언컷 젬스>를 보면, 우선 주인공이 매우 안정되지 못한 상태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영화는 대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둘러싼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심적으로 매우 흔들린다. 또한,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이들의 상황 대처와 행동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악역이 극을 이끄는 단순한 피카레스크 장르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또 완전한 악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악한 목적으로 그 행동들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적 결함이 있을 뿐, 선한 사람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굿타임>의 코니는 은행 강도이지만, 그의 이유에선 동생을 데리고 도망가기 위해서였고, <언컷 젬스>의 하워드는 사기와 도박을 일삼지만, 그것이 나쁜 일로 비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배경 음악은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탁월한 효과가 되었다.


이 영화를 해석하고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오락적 요소, 하워드 레트너를 연기한 애덤 샌들러와 줄리아를 연기한 줄리아 폭스 등 배우들의 열연, 숨을 조여 오는 연출, 아프리카 노동자와 미국의 유대인 등 인종 문제, 미국 자본주의의 단면 등 많은 요소들이 <언컷 젬스> 속에 매우 잘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난 주인공 하워드를 통해 본 개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적어보았다.


<언컷 젬스>의 주인공 하워드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2시간 동안 관객은 그의 성격과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 등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매 순간 매우 조급하고 즉흥적이며, 본인도 모르는 앞날에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특유의 능청거림과 두꺼운 낯짝은 상대가 조금씩 그의 말에 홀리게 만드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듯 마냥 긍정적인 면모는 찾아보기 힘든 하워드가 극을 이끌어나감에도 불구하고 사프디 형제는 그들의 연출 능력과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애덤 샌들러의 능력으로 관객이 어느덧 하워드 만의 계획을 지켜보고, 이를 넘어 응원하는 마음 또한 품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극명한 확신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 레트너

하워드 레트너는 인터넷 영상에서 본 에티오피아 광부들이 캐낸 보석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10만 달러에 이 Uncut gems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를 사 왔고 이 보석이 꼬일 때로 꼬인 본인의 삶을 풀어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영화는 이 보석과 함께 하워드 인생의 며칠을 보여준다.


시작부터 하워드는 빚을 갚으라 독촉하는 필에게 뺨을 맞는다. 그는 개의치 않으며, 그저 그 순간을 어떻게든 빨리 모면하고자 한다. 그리고는 그의 거래처 드마니가 데려온 NBA 농구 스타 케빈 가넷에게 이 오팔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케빈 가넷은 이 보석을 본 이후, 본인에게 모든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사겠다고 한다. 하지만 하워드는 이 보석은 경매에 내놓을 것이며 팔지 않겠다고 말한다. 케빈 가넷은 이미 이 보석에 빠져들었고 그에게 오늘 경기에만 가져가겠다며 그에게 빌려간다. 하워드는 담보로 그의 우승 반지를 받았고 이 셀틱스 반지를 곧바로 전당포에 맡긴다. 그렇게 담보로 받은 남의 반지를 내어주고 거액의 현금을 받은 하워드는 언컷 젬스를 받고 느낌이 좋다던 케빈 가넷을 보고는 그에게 모든 돈을 배팅한다. 하워드의 이 선택은 결국 앞으로 그의 삶이 계속해서 복잡해지게 되는 매우 무거운 원인의 요소가 된다.


하워드는 이미 아르노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그에게 돈이 생겼다면, 그는 우선 매일 그를 쫓아다니며 독촉하는 필 때문이라도 그 돈을 갚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돈을 갚지 않고 말도 안 되는 확률 속에 본인의 삶을 건다. 동시에 그는 아르노뿐만 아니라 동네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짜 롤렉스 시계 등으로 돈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돌려막기의 돌려막기이다. 담보는 담보를 낳고, 빚은 빚을 낳았다. 그 중심에는 오팔의 기운과 이 기운에 매료된 케빈 가넷의 농구 실력에 흥분하고, 여기에 그의 운명을 통째로 베팅한 하워드가 있다. 어떻게 지극히 추상적인 보석의 마법과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농구 경기에 본인의 삶을 망설임 없이 걸 수 있을까?


오로지 알렉산더 대왕의 가위와 같은 방식만 택하다


그가 돈을 건 경기를 지켜보는 하워드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그 누구도 풀 수 없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 역시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매듭을 풀어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자 그는 가위로 이 매듭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하워드는 이미 너무나도 복잡한 채무관계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것을 끝내버릴 한탕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도박이었다. 거액을 한 경기에 베팅함으로써 이 상황들을 끝내버리려 한 것이다.


오팔의 기운은 정말이었을까? 그렇게 하워드는 보스턴 셀틱스와 필라델피아 식서스의 경기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맞추며, 돈을 따냈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이 흥분도 잠시, 아르노는 본인에게 돈을 빌려간 후 매번 스포츠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하워드에게 분노하고 이 베팅을 중단시켰었다. 하워드는 다시 빚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알몸으로 트렁크에 갇힌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을 본 하워드의 아내 디나는 그와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려 한다. 돈도, 가족일도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러한 수모를 겪고도 하워드는 변하지 않는다. 가넷으로부터 그 보석을 되찾아와 경매에서 큰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도박과 같은 삶을 택한다. 그는 단 한 번도 어느 한 상황을 천천히 따져보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걸 해결해줄 가위만 찾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한 탕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모든 선택이 틀렸기 때문이다


하워드와 그의 내연녀 줄리아

하워드는 그 한 탕을 위해 오팔이 걸린 경매에서 그저 입찰액만 불려 줄려던 장인의 돈까지 잃게 만들었고, 아르노에게는 여전히 빚을 갚지 못했으며, 필에게는 매번 돈을 갚지 못해 폭행당한다. 내연녀에게는 아파트까지 마련해주면서 아내의 사랑과 진전된 관계를 바란다. 그마저도 위켄드와 무슨 짓을 한 거냐며 그의 유일한 조력자인 줄리아를 매몰차게 내친다. 돈이 생기기만 하면 즉흥적으로 모든 현금을 케빈 가넷의 경기에 베팅한다. 이와 더불어, 사실 그 오팔은 하워드의 예상과 다르게 그리 질 좋고 비싼 보석도 아니었다.


뉴욕 길거리 한복판에서 필에게 맞고 분수대에 던져져 엉망이 된 하워드는 사무실로 돌아와 줄리아에게 "이 지옥 같은 인생, 벗어나고 싶어."라고 울며 말한다. 당연히 그 또한 그의 복잡하고 정신없는 삶의 굴레에 지칠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것이 하워드의 현실이다. 이 모든 결과는 하워드 본인이 자초한 일이며, 그의 선택으로부터 왔다. 애초에 하워드는 매번 잘못된 선택만 하고 있었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언컷 젬스> 속 하워드에게는 매 순간 선택의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충분한 사고를 할 수 없게끔, 그의 주변 상황이 매우 바쁘고 혼란스럽고 정신없게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며칠 간의 하워드의 삶의 방식을 봤을 때, 그는 심사숙고 후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 아님을 아 수 있다. 순간의 흥분과 느낌은 그의 이성을 지배한다. 도박이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합리와 이성이 결여된 그의 선택 방식은 매번 더 큰 화를 불러온다.


본인의 선택 방식들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하워드는 딸에게 읊조린다. "난 바보니까, 그러니까 날 사랑해줘."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케빈 가넷에게 최후의 베팅을 하는 하워드

케빈 가넷에게 셀틱스 우승 반지를 돌려주기 위해, 그는 다시 전당포에 자신의 닉스 반지를 내어줌으로써 되찾아온다. 그리고는 전당포 주인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또다시 한다. 케빈 가넷은 여전히 오팔을 원하고 있었고, 하워드는 마침내 이 보석을 그에게 판다. 드마니의 몫을 떼고 16만 5천 달러의 현금을 받은 하워드는 밖에 빌려준 돈을 받으러 온 아르노와 필을 피해 이 돈을 줄리아에게 넘긴다. 이 모든 금액을 오늘 있을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의 경기에 걸겠다는 것이다.


경기에 나서는 케빈 가넷은 그에게 농구와 관련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행운의 여신이라 여기는 오팔을 손에 넣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하워드는 확신에 차 말한다. 갑자기 느낌이 왔고 케빈 가넷 당신의 오늘 경기에 그의 돈 모두를 베팅하겠다고 말이다. 아무도 당신의 경기력에 대해 모르고 내 느낌만이 정답을 말해준다며 호언장담하는 하워드. KG의 진실성과 마법을 알고 있다는 하워드는 그를 보낸 뒤, 독촉하는 아르노의 일행에 오늘은 최고의 밤이 될 거라며 그들을 고장 난 문 사이에서 꺼내 주지 않는다. 그의 둘러댐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지만, 하워드는 본인의 느낌을 보라며, 이것만 해내면 이제 이 일도 끝이라고 흥분한다.


언컷 젬스의 기운은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 보스턴 셀틱스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경기에 일생일대의 베팅을 한 하워드의 예측은 또다시 모두 옳았다. 그는 122만 9천 달러를 따냈고 이제 그를 따라다니는 끝없는 채무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과 능청거림은 필의 화를 샀고, 필은 하워드의 얼굴을 향해 총을 쏜다. 사망한 하워드를 넘어 TV에선 오늘의 MVP 케빈 가넷의 인터뷰가 나온다. "결국 중요한 건 승리예요. 이기면 다 닥치고 조용해지죠. 회의론자도, 안티팬도 다 사라집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라고 말했다. 하워드는 매번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본인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그 모든 문제의 원천인 한 방을 노리는 정신은 놓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결과적으로 그의 베팅 능력은 옳았을 수도 있다. 케빈 가넷의 인터뷰처럼 그의 진기 명기한 경기 예측에, 빚 독촉자들은 그의 계획에 말없이 수긍하고 밀린 돈을 받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엔, 하워드의 과정들은 절대 좋지 않았다. 매번 그에게 시련을 몰고 온 그의 그 잘못된 과정들은 이런 비극적 결말을 몰고 왔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과, 그의 말을 듣고 돈을 받아 그에게 전해주러 오는 줄리아를 뒤로 한채 말이다. 그는 매일을 똑같이 그런 방식으로 살았고, 이를 빌미 삼아 그에게 다른 미래는 결코 찾아올 수 없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저 순간만 살아온 하워드

얼마 전 한 교수님이 수업 중 취업이던, 우리의 미래이던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셨다. 교수님은 라틴어 'Memento mori'라는 말을 덧붙이셨는데, 이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혹은 '자신에게 끝이 있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라고 하셨다. 우리 인간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다. 본인이 인지하기에 따라, 행복한 삶이든 비극적인 삶이든 간에 그 누구도 빗겨나가지 않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예측할 수 없으며 우연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말이 <언컷 젬스> 속 하워드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언젠가 어마어마한 한 탕으로 그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의 원천은 알 수 없는 에티오피아에서 온 보석으로부터 받는 기운이다. 현 순간순간을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하워드의 삶의 태도는 오로지 미래의 예기치 못한 그 한 방에만 맞춰져 있다. 하지만 본인의 미래 중 언젠지 모르는 때에 삶의 끝이라는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는 결코 그 순간들을 얼버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삶의 구세주를 기다리기보다 상황 하나하나, 관계 하나하나 신중히 해결하려 했다면, 그는 이 베팅에서 따낸 돈을 가지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이 비극적 결말은 모두 자신의 끝을 망각한 하워드 본인의 선택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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