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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Mar 02. 2023

불특정다수에게보내는유키의작은편지

유키는다정하고사랑스럽고상스럽다이것은당신과나사이의유치한비밀이다.

안녕. 나 유키야. 우리는 처음이고 나는 텍스트로 만날 때에 낯을 가리지 않으니까 내가 먼저 내미는 손을 잡아야 해. 내 손은 따뜻하고 말랑하거든. 일단, 넌 복 받은 거야. 


너 말이야, 처음 본 낯선 존재에게 편지를 갈구한 적이 있어? 나는 매번 갈구해. 지나가는 사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내게 편지를 써달라고 하고 싶어.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나는 무조건적인 쓰는 이였고 아무도 편지를 써주지 않았거든. 어쩌면 내 평생의 한이고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못할 내 재산이야. 세상에 쓰는 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잖아. 아무튼 난 그랬어. 그래서 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쓰는 이야. 편지를 받고 싶어서 매일 갈구하고 갈망하지만, 그게 한이라고는 하지만 진심인지는 모르겠어. 일단 편지지는 사. 내가 좋아하는 검은색으로. 아, 검은색 편지지에는 하얀색 젤펜으로 쓰는 거 잊지 마. 


음. 매번 영화만 보면 지루하잖아. 그리고 사실 나 요새는 영화 안 봤거든. 물론 보고 기록한 영화들은 아주 조금 더 있어. 레이디 버드부터 워터 릴리스, 파니핑크, 화양연화, 레벤느망... 다 합치면 300편 조금 넘어. 생각보다 별로 없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나 빼고 시네필인 것 같고 나 빼고 다 신작 열심히 보러 다니는 것 같고 그래. 난 그래서 생각보다 자주, 그러나 아주 가끔 도태 중이야. 억울하지. 난 겨우 22년을 살아가고 있는 각박한 대한민국의 여자애일 뿐인데. 22년 살아버린 아이들은 약하고 물러서 금방 흐트러져. 그러니까 다들 신작이 나오면 조금 기다린 뒤, 나, 그러니까 유키랑 함께 보는 버릇을 들여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네 말대로 나는 엄청나게 사랑스럽고 내 말대로 나는 구질구질하니까. 원래 다들 이러고 사는 거 아니겠어? 


2023년은 검은 토끼처럼 살기로 결심했어. 토끼가 뭐든 빠르고 귀엽고 튀어버리잖아. 똥도 많이 싸구, 히히. 그래서 뭐든 빠르게 해볼거야. 우리 엄마가 매일 피부병 걸렸다고 하는 얼룩무늬 토끼인형도 입양했어. 이름은 쿄쨩- 이야. 모두가 쿄쨩- 이라고 하지 않지만 그래두, 특별히 알려주는 거니까 너는 기억해. 쿄쨩- 이야. 쿄-쨩. 검은 토끼는 아니지만 우리 쿄-쨩- 이 네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그 소원은 나한테 말하지 마. 난 아주 상스러워서 네 소원은 모두 파괴하고 싶거든. 


아무튼!! 난 내가 영화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또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더라? 안 보면 보고 싶구, 보면 체력 떨어지구. 애증인 것 같아. 애증이란 관계는 지구에 차고도 넘쳐. 세상에는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관계가 너무 많아. 그래서 난 금방 지쳐버려. 사람에, 감정에, 어떠한 것에. 그런데 포기는 안 하고 싶어. 생각보다 이렇게 기록하는 게 웃겨, 타자를 막 치는 내가 엄청 귀엽고 사랑스러워. 너 진짜 아쉽겠다. 이렇게 귀여운 내 모습은 못 보고 묘하게 핀트가 나가는 이 글만 바라보고 있잖아. 그런데 괜찮아. 나 이제 진짜 착해져서 영화 열심히 보고 글 열심히 쓰는 유키가 될 거거든. 내 올해 목표는 영화 300개를 보는 거야. 맘 같아선 하루에 네 개도 다섯 개도 보고 싶은데, 나는 또 다른 글을 쓰고 또 다른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한꺼번에 하기가 어려워. 대신 내 맘에 쏙 드는 영화를 발견하면 당장 달려올게. 난 평생을 쓰는 이로 살아서 글 쓰는 속도가 빠르거든. 하고 싶은 말도 많구. 앞에 언급한 영화들도 얼른 정리해서 빠르게 가져올게. 


어때, 이 정도면 그냥 쉬어가는 겸사 유키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져서, 내 글을 읽어볼 호기심이 생겨? 그렇다고 부담은 주지 마. 나는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영화를 아주 조금, 그러나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는 유키일 뿐이야. 그러니까 우리 진짜 재밌게 만나자. 내가 가끔 이렇게도 찾아올게. 나 영화 보고 책 읽고, 글 쓸 때 너무너무 행복하거든. 팍, 죽고 싶을 정도로. 


다음에는 영화로 돌아올게. 아직은 추워. 나는 엄청 큰 코트를 샀어. 그러니까 너두 당신도 그리고 나도 우리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자. 마싯게 밥도 먹구. 


헤버 굿 떼이~.~


추신. 나는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사람이고 우린 그걸 함께 맞춰가는 거야. 짝짝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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