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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영어 공부 습관을 만들어준 이야기

성공적인 비자발적 영어 공부 방법

영어 공부를 기가막히게 싫어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입니다.


    요새는 중학교 1학년 까지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 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죠. 초등학교에서도 시험을 안본다고 합니다. 이 친구 입장에서는 난생 처음 학교 시험을 본 것이나 다름이 없죠. 영어 공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당연히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당연히 시험 점수가 잘 나올 수 없죠. 20점을 간신히 넘었습니다. 객관식 문제들을 전부 1번으로 찍으면, 확률상 20점이 나와야 하는데 딱 그정도 나온것입니다.


    아쉬워하고 괴로워합니다. 점수를 받고 어느정도 충격을 먹은 것 같아요. 하지만 반전은 없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분노각성은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시험 점수가 나오고 몇일이 지나자, 아이의 행동은 똑같아졌습니다.


    수업 시간이 되어 책을 펴면, 지난 수업 때 마지막으로 폈던 그 페이지가 그대로 나옵니다. 파란색 볼팬을 껴 두었었는데, 그게 그대로 나오더군요. 한소리 하면 헤헤 웃고 맙니다. 어쩐지 밉지는 않은 녀석입니다.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하루정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금방 그만 뒀죠. 저는 악인도 선인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입니다. 큰 법을 어긴 적은 없지만, 무단횡단이나 노상방뇨를 하며 양심에 찔린 적도 없습니다. 이 학생이 수업을 그만두지는 않으니 "그냥 돈으로 보자"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잘 오르고 있는 다른 학생들도 있으니, 선생으로서의 만족감은 그런 아이들에게서 얻고, 이 아이는 그냥 돈으로 보는게 정신 건강에도 이롭겠어... 이렇게 생각했죠.


    "어떻게 선생이 그럴 수 있냐?" 라는 생각도 안들었습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조건에 따라서 성적이 오른다고? 그럼 넌 그저 그런 선생이네."


    선생으로서의 윤리 의식이나 도덕 의식이 작용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시험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아이가 그냥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며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제 능력이 형상화 된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전 사실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이건 진심이예요. 아이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또 아이들이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고 뿌듯해하는 모습을 에너지 삼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영어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를 발전시킨다면 제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이 아이가 스스로 변화한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 할 모습을 생각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이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하루에 딱 영단어 한개, 할 수 있겠어?"


물론 거짓말입니다.



    하루에 영단어 1개가 아니라,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 5개를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하루에 영어 단어 딱 하나, 그리고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 5개 공부하는건데, 할 수 있겠어?"


    제 제안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루에 딱 10분. 길면 15분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위해 매일 강의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단어 1개와 그 영단어가 들어간 문장 5개를 강의하는 영상입니다. 예컨데, 오늘의 단어가 "bed" 라면, bed가 들어간 문장 5개를 이런 식으로 줬습니다.




bed : 침대 n.


She was on the bed.

그녀는 침대 위에 있었다.


He was in bed. 

그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It's time for bed.

잘 시간이야.


He likes to have a mug of cocoa before bed. 

그는 자기 전에 코코아를 한 잔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I’m tired—I’m going to bed. 

나 피곤해. 자야겠어.




    물론 5개의 문장들 안에는 모르는 단어들이 있겠죠.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하루에 딱 10분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습니다. 대신 토요일 일요일도 쉬지 않고 매일 해야 합니다. 하루에 딱 10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걸로 영어 실력이 오를까요?


    저는 영어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에 오른쪽 손목.... 은 아니고 딱밤 한대 걸겠습니다.


    안오릅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겠죠. 하지만 이 정도로는 또래 아이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고, 시험 점수가 잘 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이런 피곤한 공부법을 고안해 낸 것일까요? 매일 매일 영상을 찍느라 저도 귀찮아 죽겠는데 말이죠.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영어 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관건은 "내가 그것을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매일 하느냐" 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한 달에 한번 한다면 습관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싫어하는 일이라도 매일 하면 습관이 됩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6개월간 딱 세번 쉬고 주말도 없이 12시간씩 근무하는 2교대를 돌린 적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죠.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밥먹고 8시에 바로 잠이 들고, 또 다음날 아침 6시 50분에 눈을 뜹니다. 씻지도 않고 다시 출근하러 갔죠. 매일 아침이 너무 싫었지만, 6시 50분만 되면 눈이 자동으로 떠졌습니다. 그게 습관이 된거예요. 싫어하지만서도.


    20살 재수학원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나서 30회씩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졸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한거죠. 천성이 운동을 싫어하지만 더럽게 비싼 재수학원 비용이 아까워서 억지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3월에 공부를 시작했는데, 6월 모의고사를 볼 때 쯤에는 팔굽혀펴기를 깜박하고 안하면 몸이 근질거리더군요. 그래서 쉬는시간에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운동도 습관이 되어버린거죠.


    내가 좋든 싫든 반복하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일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억지로 하루에 10분씩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게끔 강제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매일 주어진 시간에 숙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그날 수업 영상을 보면서 필기한 것을 찍어 보내고, 본문을 녹음해서 제출하는 숙제) 전화해서 닥달했습니다.


    당연히 처음 열정은 3일도 안되어 식었고, 그 뒤로는 제가 억지로 시켜서 겨우겨우 했죠. 하지만 하루에 1시간 2시간씩 숙제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눈 딱 감고 10분만 하면 끝나기 때문에 아이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3주 이상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죠.



    




이제는 알아서 숙제를 제출 합니다.


    제가 닥달하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카톡 알람이 뜹니다. 말없이 필기한 사진과 녹음본을 보내죠. 영어에 대한 감도 유지하게 되었고요. 수업을 할 때 마다 실력이 올랐다가 다음 수업시간이 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이제 없어졌습니다.



    저는 효과가 좋은 이 방법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적용했습니다. 이 아이처럼 공부를 아예 안하는 아이들은 아니지만, 조금씩이라도 매일 공부를 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더군요. 아이들의 반응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한 학생이 자기 친구에게 이걸 소개시켜줬는지, 제가 가르치는 학생도 아닌데 자기도 시켜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졸지에 하나의 학습 프로그램이 되어버린거죠. 만난 적도 없는 그 아이와 카톡과 음성 메시지로만 피드백을 하며 소통을 또 하고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만들어진 이 작은 습관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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