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장 일기
평범한 사람들에게 “철학”이라는 것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멀게 느껴진다고 했지 싫다는 것은 아니다.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대단해 보인다. 근데 나랑은 크게 연관이 없다.
또 그걸 잘 알아도 실생활에서 쓸모 없을 것 같다.
돈 많은 사람들이 수십만원씩 써서 발레 공연을 본다던지,
세 살 아이가 물감으로 장난친 것 같은 그림에 수천만원씩 쓴다던지.
철학은 나에게 있어 발레공연이나 현대미술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것.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도 돈 많이 벌면 한 번 관심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문장 해석 연습지를 만들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해석연습지에 나오는 예문들이 유익하면 좋겠다는 생각.
따로 책 읽을 시간도 의지도 없는 아이들이,
학원에 와서 영어 문장 해석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기초적인 상식이라도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4 용지 기준으로 앞쪽에 10문장, 뒤쪽에 10문장, 총 20문장이면
아이들이 10분에서 15분 정도 집중해서 해석 연습을 한다.
그 뒤에 피드백을 해 주면, 수동적인 수업이 아니라 능동적인 수업이 된다.
15분간 자신이 집중한 것에 대해 5분 피드백 받는 것이,
아무 생각없이 선생님의 말을 60분 듣는 것 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나는 이 과정이 너무 좋다.
실수 했을 때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자기 힘으로 해석 해 낸 영어 문장에 칭찬을 받았을 때 빛나는 눈빛이 참 좋다.
이 과정 속에서 “배경지식”까지 얻어갈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
Chat GPT를 키고 몇 가지 테스트를 해 봤다.
“to 부정사, 동명사, 분사, 그리고 관계대명사를 이용해서 A2 수준의 영어 문장을 20개 만들어줘.”
여기에 덧붙여 여러가지 주제를 넣어봤다.
“미국의 역사”
“뉴욕에 대한 소개”
“서부 개척의 프론티어 정신”
“서부 개척 시절 북미 원주민들이 겪었던 비극”
등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봤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와 닿지 않는 문장들을 뺐다.
문장 길이가 너무 길어지는 것도 뺐다.
사실 관계가 모호한 문장들도 제거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이전의 문법 수업에서 쓰던 몇 가지 해석 연습지를 새로운 결과물로 대체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노트북을 켜고 생각을 확장 시켰다.
문장 해석 연습지를 사용해서 배경지식까지 챙기는 커리큘럼을 만들면 어떨까.
단편적인 해석 연습으로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배경 지식으로 자리잡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주제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영어 실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어떻게 만들까?
남의 생각을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기 전에 수 없이 반복해서 부모님의 말을 듣고 따라 했던 것처럼,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그 시작점은 어디일까.
생각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그래, 철학이 아닐까?
난 모른다.
철학을 잘 모른다.
사춘기 시절 겉멋으로 책 몇 권 읽어본게 전부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깊게 탐구한 적 있지만,
철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수박 겉 핥기 식이라도 좋으니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일단 내가 뭘 알아야 커리큘럼을 짜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GPT와 함께 고대 그리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