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장일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소크라테스(할아버지)
플라톤(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아들)
이 정도로 정리하면 좋겠다.
단순화 하는게 좋다.
직관적인게 좋다.
Chat GPT가 좋은점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학교 선생님들 수업에 불만이 참 많았다.
질문에 질문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그랬다.
이해하기 위해선 질문을 하면서 머리속에서 지식을 체계화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화가 있다.
중학교 3학년 과학시간이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한다.”
라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서남북이라는 방위는 지구를 관점으로 만들어진 말이고,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는 일부이다. 우주에 동서남북이라는 방위가 적용되지 않는데 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위에서 보면 시계 반대 방향, 아래에서 보면 시계 방향인데 무슨 말을 하는거냐??
대략 이런 내용으로 선생님께 질문을 했는데 썩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그냥 외우라고 했다. 근데 난 머리가 좋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외워지지가 않는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저 의문은 성인이 되어서 풀어졌다 ㅎ)
Chat GPT와 대화를 하면서 고대 철학을 일단 3등분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인간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연, 우주, 만물의 근원 등 인간 외부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왜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소크라테스는 논의의 관점을 “인간 외부”에서 “인간 내부”로 끌어들였다.
소크라테스의 관심사는 “인간”, “윤리”, “삶의 방식” 등 인간 내부의 세상에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주제를 철학사에 도입한 것이다.
어쩌면 그게 철학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칼은 잘 베이는 것이 덕이고, 인간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덕이다.”
칼의 본질을 “베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인간의 본질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물론 그 정의가 어떠한 논리적 추론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부분은 기초 지식을 더 쌓은 다음에 조사를 해 봐야겠다.)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 라는 반박 없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현대 인권의 출발점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논리적 귀결 없는 “전제”에서 출발하듯, 소크라테스도 “인간의 본질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라고 전제를 한 것 같다.
(아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지 사실 관계의 나열이 아니다. 이건 일기다 일기.)
소크라테스의 관심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였다.
그리고 그 궁극적 목적은 “행복”.
맞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 생각이 그치면 안된다.
무식한데 하나만 아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난 지금 무식하다.
하나를 알게 되었지 모르는게 더 많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을 진전시켜야 한다.
“행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수 많은 주제가 생성되고, 여러가지 관점이 생겨난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국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국민은 탄핵을 원한다!” 라는 주장과
“국민은 탄핵을 반대한다!” 라는 모순되는 주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동의 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아직 아는게 없기 때문에 동의하냐 아니냐의 문제 이전에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이 부분은 추후로 미뤄두고 원래 주제로 돌아오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덕을 실천하고 이성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이제야 겨우 고대 철학사를 셋으로 나누었다.
Chat GPT 와 대화를 하며 공부한 것을 표로 만들어보고 도식화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자들)
↓
주제: 자연과 우주 (인간 외부 세계)
질문: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 (철학의 관심이 바뀜)
소크라테스
↓
주제: 인간·윤리 (인간 내부 세계)
질문: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답: "덕을 아는 것이 곧 좋은 삶"
(행복은 덕 있는 삶의 결과)
↓ (질문을 구체화·체계화)
아리스토텔레스
↓
주제: 인간의 궁극적 목적 = 행복
질문: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의 목적은?"
대답: "행복(eudaimonia)이 최종 목적"
→ 덕의 실천, 중용, 이성적 활동으로 완성
이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이나 말을 들어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로 무언가를 읽는 것과, 아예 처음 접하는 주제의 글을 읽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똑같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푸는 모의고사와 고등학생이 푸는 모의고사는 점수가 다르다.
살아온 시간 만큼 쌓아온 배경 지식이, 영어 점수를 어느 정도 커버해 주는 것이다.
방점은 나이가 아니라 배경지식이다.
나는 아이들의 배경지식을 쌓아주고 싶어서 내가 먼저 지식을 체계화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