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 영화를 열 번 이상 보는 것처럼 공부하기

굉장히 클래식한 영어 공부법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돌려 본 적 있다. 딱 하나.

8년 전에 개봉했던 "어바웃타임"이다. 50번 이상은 봤다.


이제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과 똑같은 타이밍에 대사를 말할 수 있고, OST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빨래를 개면서 "How long will I love you"를 중얼거리면, 옆에서 "그거 또 봤냐"라고 물어볼 정도이다.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밖은 눈이 펑펑 오는데 영화관 좌석에 앉아있던 내 마음은 싱숭생숭 떠다녔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어떤 영화 추천하냐는 말에 나는 항상 "어바웃타임"을 제일 먼저 이야기한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하나를 수십 번 돌려보면서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것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영어공부와 연결을 시켜보고자 한다.



한 영화를 50번 이상 돌려보면 이렇게 된다.

1) 주인공이 입을 벌리는 순간 나도 동시에 대사를 말할 수 있다.

2) 그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어떤 음악이 나올지를 맞출 수 있다.

3)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의 표정, 동작이나 그냥 흘려 들었던 대사들이 분명하게 보이고 들린다.






내 어머니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하신다.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사골처럼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난 한 책을 여러 번 읽어본 적은 없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네 번 정도 읽었지만, 그냥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정도였다. 날씨 좋고 한가한 주말 오후에 한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그런 책 정도. 그런데 한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나니 그제야 어머니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예술작품으로부터 엄청난 영감을 받거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를 재해석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만큼의 재주는 없다. 다만, 영어 공부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해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영어 공부는 제가 어바웃타임 보는 것처럼 하시면 돼요."


미국 드라마의 짧은 클립이든, 영어 문제집의 한 지문이든, 영자 신문의 기사든 상관없다. 하나를 공부한다면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가? 

그것도 정말 좋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어바웃타임을 몇십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 나는 그 안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본문" 또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 


지금 주어진 것에서 얻는 것이 1이라면, 사실 거기서 당신은 10을 느낄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1만 얻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의 지적 능력을 늘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니까 1을 얻을 시간을 10번 반복해서 10을 얻을 수 있도록 해보자.


영어 초보자들을 가르칠 때 나는 한 본문을 세 번 이상 가르친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한 본문을 사골처럼 복습하게 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읽는 법을 가르친다.

읽는 게 읽는 게 아니다. 

당신은 읽었다고 하지만, 그 읽는 것을 외국인이 듣는다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발음과 강세 그리고 연음을 신경 쓰면서 읽게끔 연습시킨다. 

사전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녹음 파일을 제작해서 주고 반복해서 연습하게 해 준다. 


2) 단어를 가르친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서 그 뜻을 정리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거기서 나는 초보 학습자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단어의 숨은 뜻이나 활용들을 덧붙여서 알려준다. 


그러나 단어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한 단어를 봤을 때, 

해당 본문에서 단어가 쓰인 문장이 통째로 생각나게 하는 것. 


단어는 문장 속에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단어는 문장 안에 위치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complete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데, 그 단어를 활용한 문장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당장 문장을 만드는 문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해당 단어가 들어갔던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해서 입에 익도록 해야 한다. 

"문장"이라는 문맥 안에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익혀야 한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라는 중구의 대사는 신세계의 내용 속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3) 문장을 가르친다.

한번 읽고 문장을 해석한다고 해서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슬프게도) 사람은 생각보다 멍청하다. 

금방금방 잊어버린다. 

한번 본 것, 한번 읽어본 것 만으로는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영어 초보라면 문장 구조를 간단하게나마 풀어서 알려준다.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많이 다르다.

영어 어순에 익숙해질 때 까지는 영어 문장 구조를 의식적으로 풀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영어 문장을 자연스럽게 해석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문장 구조를 풀어 보려고 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 문장을 응용한다.


읽을 수 있고, 단어도 익숙해졌고, 문장 구조도 익숙해졌다. 

이제는 배운 문장들을 응용해서 다른 문장들을 만들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시제를 바꾼다던지, 긍정문을 부정문으로,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만드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배운 본문에 대한 습득이 끝난다.


5) 다섯 번 이상 복습한다.

다음 날이면 반 이상 까먹고 다다음날이면 거의 다 까먹는 게 사람의 기억력이다. 

무엇이든 반복 속에서 탁월함이 자라난다. 


한번 배운 본문은 5일 이상 반복하여 질리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단어들을 정리해 둔 단어장만 봐도 그 단어가 포함되어 있던 문장이 무엇인지 떠오르게 된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대사를 외우게 되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들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한 본문을 반복하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표현들을 익힐 수 있고, 한번 배우고 날아가는 지식이 아닌 체화되는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너무 정통적인 방법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했다. 뻔한 방법이지만, 이를 잘 따라오는 학생들은 실력이 자라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클래식한 방법을 통해서는 단순히 수업 진도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력의 양이 커진다. 


강사의 역할은 도와주는 것뿐이다. 

사실은 혼자 하는 것이다. 

PT를 하지 않아도 헬스장에 다닐 수 있지만, 돈을 주고 PT를 받으면 더 빠르게,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스런 스피킹을 위해 알아야 할 영단어는 몇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