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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에게 답습된다.

벤지 이야기 2

"에이 피 피 엘 이, 에플, 사과"


내가 어렸을 때 앞면에는 영어 단어가, 뒷면에는 한글로 뜻이 적혀있는 단어 카드가 유행했었다. 나는 앉아있는게 싫어서 도망다녔고, 엄마는 그런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옷방으로 뛰어가면 엄마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나를 쫓아와 한 단어라도 더 보게 해주셨다. 도망가는게 지치면 그냥 자리에 앉아 엄마가 말하는대로 따라했다. 리듬에 맞춰 '사과'의 스펠링을 외우게 됬다.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영어에는. 그 뒤로도 한동안 나는 b와 d도 헷갈려했었다. 그때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때다. 5학년 때 도시로 전학을 갔는데, b와 d를 헷갈리는건 반에서 나밖에 없었다. 엄마의 교육법은 나한테 통하지 않았다. 


에이 피 피 엘 이 에플 사과




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내가 이 나이 때 그 영어 카드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Apple"의 스펠링과 사과를 부르는 마법 주문의 리듬 뿐이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것 뿐이었을까?


엄마는 나에게 "영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친구들이랑 밖에서 뛰어다니는데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던 때이지만 그 와중에 나는 '영어가 중요하긴 한가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무언가의 가치를 아는 것과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 어딘가에 '영어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자리잡히게 되었다. 이는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일이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아이와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잡는 아이는 유전자가 결정하는게 아니라고 한다. 이는 부모의 태도가 정한다. 백지와도 같은 아이의 머릿속에 바퀴벌레는 그냥 빠르게 움직이는 흥미로운 장난감일 뿐이다. 손에 잡힌다면 분명 입속으로 들어가겠지 ...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옆에 있던 엄마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때려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아이는 커가면서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옆에 있던 엄마가 무서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피한다면, 아이는 그 태도를 학습하게 된다.


태도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 대한 "감정"까지 학습을 한다.


한낱 바퀴벌레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까지 아이에게 학습되는데,

영어는 오죽하랴.



"영어"를 마치 "오직 소수만 넘을 수 있는 거대한 산이자 벽"으로 대하며 손사래치는 문화가 30대 이상 세대에게는 어느정도 자리잡혀있다. 학습의 기회는 오직 학교에만 있었고, 학교에서는 영어를 "언어"가 아닌 "학문"으로 가르친다. 초록색 칠판을 가득 메운 문법지식들은 그 세대에게 영어에 대한 "공포"내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문제는 영어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 마치 남일이라는 태도가 다음 세대게도 그대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만 꺼내면 전 세계 어디와도 접속이 되는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층에게도 영어는 역시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도 이 일은 아직도 많이 일어난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가정을 방문하거나 아니면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많이 느껴진다. 우선 부모님들부터 "영어"라는 것에 대한 감정이 그닥 좋지 않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영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어른들은 어느정도의 '수치심' 또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거나, 바이올린 레슨을 시킬 때는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맡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예민한 존재라서, 영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를 무의식중에 캐치하고 이를 내면화 해버린다. 수 많은 케이스를 통해 내린 나의 결론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다뤄보겠다.)






어머니의 영어 교육은 내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어를 대하는 감정이나 태도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뇌가 굳기 전 아이에게는 이게 정말로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을 형성한 것은 영단어 카드 뿐은 아니었다.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는 나의 취미는 어머니 덕분에 생겨났다.


"한국 영화는 너무 폭력적이야" 라는 말로 어머니는 외국 영화를 많이 보셨다. (물론 외국 영화도 폭력적인게 많지만 파란 눈의 흰 피부에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휘두르는 폭력은 뭔가 더 멀게 느껴졌다.) 드라마를 하나 보기 시작하면 연속해서 몇편이나 보셨는데, 난 어렸을 때 부터 엄마 옆에 앉아서 드라마를 봤다. 기억나는건 "로스트(LOST)"시리즈이다. 


이 장면에 숨죽이며 긴장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살아있다.


부모님이 퇴근한 뒤 우리 가족은 거실에 앉아 미드 로스트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쇼파에 앉아서 한 시즌을 통째로 보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드라마 보는걸 좋아했으면서) 어머니는 드라마를 켤 때 마다 "이게 영어 공부에 얼마나 좋은데"라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옆에 앉아있었다. 


돌아보면 영어로 된 영상텍스트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직접적으로 어머니에게 영어를 배운 것은 "에이피피엘이 애플 사과"뿐이지만, 

어머니 덕분에 나에게 영어는 높은 산이나 벽이 아닌, 

그냥 태권도나 바이올린처럼 배우면 익힐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커가면서 어쩌다보니 나는 그 선택지를 택하게 되었다.

그 선택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해주는 사람이 될 줄은 나도 어머니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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