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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눈치 아닌 배려다

눈치와 배려, 배려와 눈치 –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와 성찰

by 퍼니준




글 | 퍼니준 (소주 아티스트, 『알랑말랑 소주탐구생활』 저자)


‘눈치’.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조차 “한국은 눈치의 나라”라고 단정 짓곤 한다. 마치 눈치가 한국인의 기본 정서인 양, 특정한 민족성처럼 굳어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쯤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로 한국은 눈치의 문화인가? 아니면 배려의 문화인가?


‘눈치’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반응을 의식하며, 나의 행동을 조절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수직적 관계에서 많이 쓰인다. 상사, 선배, 혹은 권위자 앞에서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어떤 기대나 바람이 내 안에 있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필자도 직장 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눈치를 봤다. ‘왜 이렇게 불편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그 안에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이익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그 틀에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단어를 ‘배려’로 바꿔보자.

배려는 상대방의 지위나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술자리에서 술잔이 비었을 때 조용히 따라주는 행동, 반찬을 집어주며 ‘많이 먹어’ 하고 건네는 손길,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몸짓. 이 모든 것은 ‘눈치’가 아닌 ‘배려’다.


우리는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능력으로 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을 경계하고, 나를 조심하는 것에 그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반면, 배려는 나의 행동이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다. 술자리의 주도(酒道) 또한 그 본질은 배려에 있다. 소주잔을 받기 전 고개를 숙이고, 잔을 두 손으로 받으며, 건배 후 천천히 마시는 행동은 상대방을 향한 존중의 예법이다.


우리는 카페에 놓인 남의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는다. 누가 볼까 ‘눈치’를 봐서가 아니다. 그 물건이 누군가의 것임을 존중하고,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그것이 배려다.


물론, 문화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눈치 역시 한국 사회의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한 일종의 생존 언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한국인의 핵심 정서로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문화는 무엇인가. 눈치인가, 배려인가?


한국은 ‘배려의 문화’다.

배려는 약자가 강자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 동등한 존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오랜 유교 전통 속에서도 눈치를 보라는 가르침은 없다. 오히려 ‘상대를 먼저 생각하라’는 윤리적 미덕이 반복된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

한국은 눈치의 문화가 아니다.

서로를 향한 이해와 존중, ‘배려의 문화’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자랑스레 세계에 전해야 할 진짜 한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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