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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작가의 변명... 소비의 죄책감

by 퍼니준

내 안에 모순이 있다.

나는 뭐든 생산하고 싶다. 하지만, 소비하고 싶지 않다.

소비라고 하는 것은 뭔가 죄를 짓는 거 같다. 죄라고까지 하기에는 뭔가 무거우니 대략 길티(gulity)를 느낀다고 할까? 조금은 덜 무겁다.

왜냐면, 무엇인가를 산다라고 하는 것은(먹는 것은 그래도 눈앞에 사라지니 괜찮다) 그 물건의 쓰임새가 완벽해서 매일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안경 신발, 옷, 차... 그런데, 그것도 과다하면 부담스럽다. 매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크게 상관없다. 비싸더라도 그 쓰임새가 지속된다면 그것이 나쁜 소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장 경계하는 것이 소품들이다. 소품은 필수품이 아니다. 더구나 싼 소품은 소비할때 살짝의 마음의 위로내지는 작은 성취감만 느끼게 할 뿐 결국 좁은 집 안에 공간만 차지하기 때문이다. 공간 또한 물건으로 쌓아두면 그것 또한 낭비라고 생각한다. 쓰임새 없는 물건을 쌓아두니 그 공간을 세로 치면 얼마나 또한 낭비인가.


이런 소비에 대한 경계심은 작가로써 또는 작품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항상 생각해 보는 굿즈(goods)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내가 만든 굿즈가 행여 잘 팔린다고 해도 걱정이다. 과연 쓰임새가 있을까? 그래서 내가 만들 물건, 굿즈들은 누군가에게 완벽히 소비되길 바란다. 아니면, 마치 공장에서 태어난 반려동물처럼 태어났기 때문에 보호하게 되고, 그 심리를 이용해서 다시 공장 동물을 생산하는 족속들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길티다.


나는 브랜드의 마케터이자 PR전문가다. 분명 브랜드는 소비자가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도 필요하게 심리를 조정해서 소비를 이끌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마치 백신을 팔기 위해서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아 복잡하다. 어떤게 옳은지 모르겠다. 집안에 버리지 못하고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며, 언젠간 쓰임새가 있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줘서 제대로 쓰이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쌓아둔다.

그러다보니 이미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이 산더미다. 마치 배를 둘러싼 내장 지방같다.


다시 돌아가 나는 작가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작가로써의 활동에 부합하는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불편한 게으름의 마음을 갖게 한다.

KakaoTalk_20251108_233717576.jpg 여기서 실제 사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기억의 분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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