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안녕, 소주 한 잔〉
인터뷰 │ 소주 아티스트 퍼니준
“폐가의 마지막 순간에 소주 한 잔을 올리는 마음으로, 공간을 다시 숨 쉬게 했습니다.”
지난 11월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의 철거 예정된 폐가에서 열린 단 하루의 예술 레지던스 전시에 참여해 〈폐가 안녕, 소주 한 잔〉이란 전시를 연 소주 아티스트 퍼니준(김완준) 작가를 만나, 그가 폐공간에서 펼친 ‘팝업사이클링’ 작업과 한국 주도 문화를 예술로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폐가에 마지막 소주 한 잔을 올리는 마음이었어요”
Q.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성수동의 철거 예정된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마음이 끌렸습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머물렀던 집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었어요. 그래서 ‘폐가 안녕, 소주 한 잔’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공간에 소주 한 잔을 올린다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를 예술로 기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 “팝업사이클링은 버려진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입니다”
Q. 작품 구성에는 기존에 쓰였던 현수막이나 폐자재가 많이 보였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저는 오래전부터 업사이클링을 기반으로 한 ‘팝업사이클링(Pop-upcycling)’이라는 개념을 작업에 사용해 왔습니다. 폐공간, 폐자재, 그리고 옛 현수막 같은 버려진 오브제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과정이죠. 이번 공간 역시 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구조와 흔적을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감정선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쓴 긍정 키워드, ‘센술잔’ 라이브 드로잉, 재활용한 대형 설치물을 함께 배치해 폐허 같은 공간을 미묘하게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 “한국의 주도는 태도의 문화입니다”
Q. 전시장 중앙에 ‘주류마블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떤 의도였나요?
“한국의 주도(酒道)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주류마블판’을 소반 위에 올려,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어요. 외국 관람객들이 특히 재미있어하더군요. 단순히 술잔을 주고받는 예절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가 담겨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감탄이 참 반가웠습니다.”
■ “벽지 뜯긴 날벽 위에 직접 그린 ‘소주 한 잔’… 공간이 캔버스가 됐습니다”
Q. 전시장 한쪽 벽에 라이브 드로잉을 하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공간이 가진 결을 그대로 쓰고 싶었습니다. 벽지가 뜯긴 날벽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감정의 단면이었어요. 그 위에 제가 ‘소주 한 잔’ 드로잉을 남기는 건, 마치 공간과 협업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깨끗한 벽에서만 예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래된 벽은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거든요.”
■ “800명 넘는 관람객이 하루에 다녀갔습니다… 이것은 작은 도시 실험이었습니다”
Q. 전시가 단 하루였음에도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8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 폐가에 발을 들였죠. 그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도시 실험이었습니다. 사라질 공간이 오히려 가장 활기찬 ‘하루’를 맞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성수동이 가진 도시 재생의 흐름 속에서, 예술이 지역성과 글로벌 아트 신을 연결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 “주도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 공간을 다시 연결하는 힘입니다”
Q. 이번 프로젝트가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저에게 주도는 단순한 술자리 예법이 아닙니다. 태도이며 관계이고,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문화적 장치입니다. 폐가에서의 이번 작업은 바로 그런 감정을 극대화해 보여준 경험이었어요. 앞으로도 팝업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평범한 장소에 새로운 스토리와 가치를 입혀 나갈 계획입니다.”
전시는 내일팩토리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온라인 매거진 ‘주간 내일’과 오프라인 커뮤니티 ‘내일 살롱’을 통해 앞으로도 도시와 예술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 집은 끝나지만, 우리가 나눈 시간은 내일로 이어집니다.”
퍼니준 작가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공간은 예술을 통해 새로운 기억으로 재탄생했고, 이는 또 다른 ‘내일’을 향한 이야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