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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발견- 파리 모네 미술관

Musée Marmottan Monet

by 보네르

파리의 겨울은 마치 Gustave Caillebotte의 그림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Rue de Paris, temps de pluie) '처럼 채도가 낮고 햇살이 드물다. 그래서 실제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고, 여름에 비해 사람들의 외부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시야가 더 자주 뿌예지는 느낌이다.


Caillebotte.jpeg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Gustave Caillebotte, 1877)

다행히 내게 산책은 거의 양치만큼 습관이 되어 있다. 강아지 덕분에 최소 하루 두세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야만 한다. 의지가 약한 나로서는, 그리고 특히 이불에 파묻히고 싶은 이런 흐릿한 겨울 날씨엔, 그 녀석의 배변이라는 압박은 꽤 효과적인 모티베이션이다.


우리는 함께 참 많은 거리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데, 강아지가 VIP인 파리에서조차 강아지 출입이 불가한 몇 안 되는 장소중 하나가 뮤지엄이다. 사설이 길었던 이유는 모네뮤지엄은 우리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인데도, 자주 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다.(하하)



Picture16png.png 모네 뮤지엄 외관. 오래전에 사냥 롯지로 쓰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강아지 없는 산책은 어딘가 어색했지만, 가느다란 아침 햇살이 비추는 모네 박물관은 여타 커다란 뮤지엄과는 다르게 어느 예술가의 집에 초대된 듯한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모네뮤지엄은 가장 유명한 지하방 외에도 흥미로운 컬렉션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네, 르누아르, 마네와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여류 작가 "Berthe Morisot(베르테 모리소)"의 세계 최대 규모 컬렉션은 꼭 보시길 바란다. 모리소는 다른 인상파 작가들과 함께 활발히 교류하고 활동했으나, 당시 여성 작가라는 이유로 보자르 입학도 거절되고 상대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고 한다. 청개구리 세포가 발달한 나는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Berthe Morisot, "Le Cerisier" (좌) “Eugène Manet et sa fille à Bougival" (우)

멀리서 언뜻 보아도 그녀의 그림은 '아 인상파다'할 정도로 모네의 그것과 유사한 기법을 가지고 있다. 밝은 색채, 빛을 붙잡은 듯한 붓터치, 꽃이 만발한 정원과 소녀들의 무심한 눈빛, 요동치는 듯하면서도 안락해 보이는 형상들.

특히 그녀의 작품에서, 아이들의 이마에 맺힌 빛의 상(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체리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창문 바깥의 잿빛 하늘과 대조되는 따뜻한 봄의 기운을 충만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모네가 '찰나'의 빛을 잡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빛나는 아이와 자연의 생생한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의 집 정원에 1.5m 높이의 캔버스를 대형 전봇대처럼 펼쳐놓고 왼쪽 그림 "Le Cerisier"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그림도 남편과 사랑하는 외동딸을 그린 것인데, 딸은 훗날 엄마를 따라 평생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의 붓질 한 땀 한 땀에서 느껴지는 깊은 부드러움은, 아마 그녀의 가장 인상적인 뮤즈이자 주인공인 외동딸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럼에도 모네 박물관의 정수는, 비밀스럽게 위치한 지하 관람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네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위한 전용 공간. 수련 그림들이 벽 전체를 장식하여, 푸른빛과 초록빛이 느릿느릿 생명을 가지고 흘러가는 듯했다. 오랑쥬리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지만 관광객이 훨씬 적기 때문에, 보다 정적으로 그 생명력을 감상할 수 있어 나는 이곳에서의 '수련'을 더 좋아한다.

Picture5.png Claude Monet가 사용했던 팔레트(좌) "The Boot at Giverny"(우)

당연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클로드 모네 작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은, 대표작인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뿐만 아니라 시력이 나빠졌던 모네의 후기작까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보물 같다. 수련이 현실과 꿈 사이를 부유하는 듯하고, 또렷함을 잃은 형태는 몽환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Picture4.png 수련을 비롯한 모네의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모네 룸(Monet Room)


나는 이 원형의 자리 배치가 무척 마음에 드는데, 오랑주리의 기다란 반구(半球) 공간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더 해준다면, 모네미술관은 마치 모네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어느 자리에 앉아도 그의 내면과 편안히 소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일 낮 비교적 한적한 시간에 방문해서, 모네가 빛과 사물의 형태를 붙잡기 위해 온종일 앉아서 저 너머를 바라본 것처럼, 이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보시길 바란다.



물의 흐름, 이파리의 떨림, 햇빛의 이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뮤지엄 투어는 끝난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예술적 기술을 넘어선 개인적이고 순수한 목적이었다. 단순히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 감각 자체를 포착하고자 했던 그들의 작품들이 나에게 지금, 여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캐치해야 하는지 집요하게 묻는 듯했다.

그들이 캔버스에 그려낸 그 빛들은 그 전날과도 다음날과도 달랐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 내가 남길 기록은, 아마 내일의 내가 쓸 수 있는 기록과는 또 다를 테니까.




| SPOT TIP :

- 붐비기 전 이른 시간에 방문하세요. 점심 시간대가 상대적으로 한산하고, 마지막 2시간을 피하시는 게 좋아요.

- 최소 2시간 정도 할애해 작품을 음미하세요.

- 기념품 샵은 1층에 있습니다.

- 미술관이 위치한 16구는 아름다운 주택가로, 관람 후 산책을 즐기기 좋습니다.


| OPEN : FROM 10AM TO 6PM (월요일 휴관/ 목요일은 9PM까지)

| ADDRESS : 2, RUE LOUIS-BOILLY, PARIS

| REMARKS : 2027년 미술관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계획이 있어 한동안 미술관이 완전히 폐쇄될 수 있다고 하네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안전하게 26년 안에 방문하사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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