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만남의 과제
사실 '정말로' 바쁘지는 않았습니다.
정신없는 나날들이었지만, 문장 한 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요.
바쁜 건 마음이었습니다. 생각의 방향이 하루가 다르게 흔들렸고, 무엇을 기록한다는 것이 버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친구가 떠났습니다.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번 정도 근황을 나누고,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고, 지치는 일에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늘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혹시 나쁘게 들려도 그녀를 나쁘게 보지 말아 줘'라고 했을 만큼, 예의 바르고,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그리고 한식을 참 맛있게 먹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올해 초, 운동도 꾸준히 하고 식습관도 건강했던 친구의 몸에, 느닷없이 찾아온 암이란 놈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chemo에 수술까지 진행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커플은 투병 중인 그와 일부러 더 자주 만났는데, 점차 야위고 어두워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친구가 이겨낼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는 조용히 손을 잡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3주 정도 지났나, '정말로' 그리고 '갑자기' 그는 떠났습니다.
매일 아침이 두렵다는 그에게 언젠가 나는, 두려움을 기록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주제넘은 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친구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글쓰기를 주저하는데, 생의 끝자락에 있는 친구에게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내 마음이 초라하고 미안해집니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전엔 필요 없던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한 것처럼, 기록이 저에게 좋은 영양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꿈이 많습니다. 전부다, 혹은 하나라도 이룰 때까지, 작은 걸음들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파리의 겨울은 밤이 깁니다. 가지런한 밤을 보낼 방법을 찾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