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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Jan 04. 2023

호주로 놀러 온 친구와 손절했다 (2)

짠내투어와 시녀체험

나는 참다 참다 지속되는 무례함과 상식 밖의 태도들에 질려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도, 참을 이유도 없었다. 그는 ‘내가 지금 너무 당황스러우니 내일 얘기하자’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지금 끝내자며 말을 이었다.


'친구 간에 속으로 쌓아두고 말 못 하고 꿍해있으면 안 되잖아. 지금 시간을 계기로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솔직하게 다 얘기하는 시간 가져보자.'


그리고 나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행동들과 태도, 말했던 것들을 모두 꺼내어 이야기했다. 그는 답했다.


'인격 형성이 덜 된 중고등 이후로 성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야. 나 너 말고도 다른 친구들 일주일 넘게 우리 집에서 지내게도 해 봤고 이런 문제 전혀 없었어. 우리 지금 고작 4일 차야.'


그는 마치 내가 예민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처럼 몰아가려고 했다. 또한 처음부터 '정말 몰랐어' 스킬로 일관했다. 그가 모르는 것이 아닌 '모르는 척'을 한 증거들과 태도들을 하나하나 꼬집어 말하니 입을 닫았다.


애초에 그에게 이득이 되는 여행이니 시작이 된 것을 나도 알고 있었고, 상관없었다. 내가 자리 잡아 살고 있으니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정말 시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줄이야. 내 생각을 모두 솔직하게 말하니 자기는 자기가 내뱉은 말들이나 행동들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본인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난 후에도 오락가락 스스로 부정했다가,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전형적인 회피형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다.


'언니가 너무 편해서, 그냥 의식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행동들이 나왔던 것 같아.'

 '그치, 무의식적으로 그냥 기저에 깔려있는 거야. 너 내가 만만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못 했어. 누구나 자기가 편한 사람 불편한 사람 알아. 너 사람 가려 대하는 게 행동으로 나온 거야. 그리고 무의식적이어야지. 일부러 그랬으면 더 나쁜 거잖아?'

'....'

'있잖아, 나는 또 나를 제일 먼저 의심했다? 내가 예민한 건가, 과대망상하는 건가 하고. 근데 네가 한 행동들 다 맞고 이거 잘못된 거 맞는 거지?'

'응..'


그리고 끝내 자신이 잘못한 것임을 인정하는 말들을 기어가는 목소리로 했다.

'내가 자꾸 지금 변명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아 이것도 변명이겠지만...'

'자꾸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네..'

'할 말이 없다.. 언니가 하는 말들이 다 맞아서..'

‘아 진짜 할 말이 없다..’


대화의 중반까지 이 친구는 계속 나의 말을 잘랐다. 그게 아니라고 계속 자기는 정말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보다도 기가 막혔던 건,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자체를 짜증스러워하며 심지어 나에게 성질을 부리려고 하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근데, 계속 내가 미안하다고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네가 언제 미안하다고 했는데?'

'계속했잖아.'

'아니 나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그리고 나 지금 너한테 미안해 소리 들으려고 여기 앉아있는 거 아니야.'


그의 미안하다는 말은 분명 속으로만 맴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그는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저렇게 말하니 드디어 최소한의 사과의 뜻이라도 전하는가 했는데,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은 이러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

'미안한 것 같고, '


정말 미안한 사람은 저따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크게 겪어본 일화가 있어서 안다.

'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미안한 것 같고~ 이렇게 말했는데, 진짜 미안한 마음이 들면 저렇게 말 안 나와. 넌 자꾸 네가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하다고 포장하려 하는데, 그냥 미안한 마음이 안 드는 거지.'


그리고 짠내투어의 정점을 찍었던, 그가 유일하게 돈을 쓰기로 약속했었던 그놈의 장보기. 4일을 지내면서 고작 야채 두 개와 신라면, 감자칩 한 개, 본인 먹을 시리얼을 산 것을 내가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나, 네가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로 몸이 아플 것 같아. 맨날 맥주랑 감자튀김이나 먹고 저녁은 그걸로 퉁치자고 하고, 아침도 시리얼이 전부인데, 나 그렇게만 먹고 못 살아.'

그리고 그가 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 사실 장을 내가 보기로 한 걸 진짜 까먹었어.'


바로 방금 전, 그가 슈퍼마켓에서 망고를 내려놓은 일화를 예시로 들며 네가 장을 보기로 했는데 너무했다는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너 계속 몰랐다 진짜 몰랐다 이러는데,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그렇게 다 모르는 척 일관해야 니가 덜 부끄럽거든. 무의식적으로 방어하는 거야.'

'.....'


그는 전에 미국에 친구의 집에서 지낼 때 모든 것을 반절 비용 부담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잘 먹어서 식비도 많이 나갔다고 했었다. 나는 렌트비, 수도세, 전기세, 모두 다 부담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신선한 야채 몇 가지만 사 달라고 했다. 이 점을 이야기했더니 그가 이상한 말을 덧붙였는데,

'그땐.. 방세는 거기 같이 사는 사람이 아예 얼마를 집세로 보내달라고 해서 가지고 갔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그냥 아무 말이나 어버버 저버버 하고있던 터라 다 듣다가 내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할 도리를 다 했네?'

'....'


대화 끝자락에,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결방안을 내놓았는데,

'그럼.. 장은 이제 내가 보는 걸로 하고... 샴푸랑 이런 건 내가 사는 게 좋을까?'

나는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진심으로 웃겨서 실소하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너 스스로한테 물어봐. 네가 필요하다 싶으면 사는 거지 안 그래?'

'...'


장 보는 부분에 있어서는 혹시 내가 리스트가 있으면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했다.

'어 있지. 네가 먹고 싶다고 계속 여러 번 말한 것들만 적어놨었지. 스프링 롤이랑, 애플파이 생지랑, 네가 시리얼에 먹을 우유만 사 와줘. 아 브로콜리랑 두부만 좀 사 와줄래? 우리 감자튀김으로만 계속 저녁 때우는데 나 진짜 영양소 있는 것 좀 먹고 싶어. 내가 맛있게 요리해 줄게.'


그리고 그의 말 중에 정말 소름이 돋았던 것이 있었다.

'언니 술 마시는 거 힘들어하니까, 양조장 이런데는 나 혼자 돌아다니게 되는 날 최대한 가보도록 하고.. 가서 같이 술 마신 거 언니 마신만큼만 내고.. 언니 좋아하는 비건 카페도 좀 다녀보자.'


어..? 뭐야. 얘 내가 비건카페 가고 싶어 하는 거 알고 있었네? 근데 여태껏 가잔소리 한 번 안 한 거야? 생각해보니까 어디 가고 싶은데 있냐고,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본 적도 한 번 없었지? 아. 그냥 자기한테 제일 적합하도록 내가 짜준 스케줄로 굴러가도록 내버려둔 거구나. 내가 아무 소리 안 하니까, 사람취향 따위도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개인 여행사로 데리고 다니면서, 손가락 까딱 안 하고 같은 질문 계속 반복해 물어보고, 그냥 나 호구 같은 시녀였구나? 내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할 것도 아니까 그냥 언급조차도 하지 않은 거구나.

술도 마실 때마다 내가 힘들다고 매일 말했다. 그냥 무시한 거였다. 그래도 자기는 가고 싶으니까. 혼자 가기는 싫고 같이 가야 편한데 얘가 힘든 것쯤이야, 그냥 웃으면서 얘기하니까 뭐.


그는 또 이어 말했다.

'그리고 우리 주말에 많이 다닐 거니까.. 언니도 평일에 하루나 이틀은 혼자 있을 시간을 주고 싶어서.. 내가 기분 나빠서 따로 다니려고 하는 것처럼 오해할까 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나 계속 여행시켜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어랏? 그가 지금 나에게 하루 이틀은 쉴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해 준 것인가!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잠정적으로 혼자 또 결론짓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나 하루이틀 말고도 회사 복귀전에 쭉 집에 있고 싶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모르겠어. 아직 어떻게 할지까지는 생각 안 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사실 위에 말을 듣고 남아있던 정마저 뚝 떨어져서 전혀 같이 다닐 생각이 없었다. 정중하게 인연을 끝내자고 말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자존심이 센 것 같은 그가 나에게 맞는 말들로 제대로 된 한 마디 반박 못 하고, 부끄러운 면들을 정면으로 들키고도 같이 다니고 싶었을까? 그냥 그는 주말에 그가 고대하던 스케줄이 있었기도 했고, 그의 내비게이션이자 구글맵, 버스시간 알림이가 없으면 매우 불편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테다.


다음 날 오전에 건강검진 예약이 있었다. 그는 그동안 장을 봐오기로 했다.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우리의 대화를 곱씹었다.


호주 데일리 라이프 & 비거니즘 콘텐츠 업로드: @genevieve_j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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