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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Jan 22. 2023

즉흥 시드니 주말여행 1/2

일상을 여행으로 , 블루마운틴 14-15.Jan.2023

토요일 아침, 어디론가 갑자기 멀리 떠나고 싶어졌다.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고민하다 산으로 결정했다. 아무 계획 없이 아침에 그날 묵을 숙소를 찾아 결제하고 바로 백팩 하나에 짐을 챙겼다. 격주로 한 번씩 주말에는 공사로 트레인에 차질이 있다. 그래서 아침 한 시간 정도를 낭비하고 비도 부슬부슬 내렸는데 이것도 분위기 있고 재미있었다. 스테이션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소이 카푸치노를 시켜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올 트레인을 기다렸다.

책을 읽으면서 가던 트레인 안. 건물 보다 나무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책을 덮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봤다.


이 날 트레인이 정상운영을 하지 않아 Springwood에서 목적지까지 무료로 운행되는 버스로 갈아탔다. 큰 버스를 타서 그런지 여행사를 끼고 편하게 이동하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다음 목적지 후보들의 이동시간을 대강 찾아보았을 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지 않아 이곳들을 모두 가게 되었다.

01 Wentworth Falls Lake

2018년에 한국에서 호주로 한 달 여행을 했을 때 왔던 곳이었다. 그때 아주 잠깐밖에 있지 못했고 시간도 오래 지나서 내 기억과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뭐랄까. 강이 볼록렌즈처럼 굴절돼서 높게 솟아있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었다. 호주에 산 지 몇 년이 흐르고 많은 곳들을 가 보고 나서 다시 온 이 호수는 그냥 조금 예쁘네 싶은 정도였다. 기억의 왜곡이 이렇게 되는구나.

강가를 구경하며 걷는데 어떤 어린아이의 아빠가 나에게 '여기 뱀 있어 봐 봐!' 하고 알려주었다. 수풀 근처에 어두운 빛깔의 무늬를 띄는 뱀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 진짜네! 알려줘서 고마워' 하고 답했다. 뱀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내 몸이 자연에 있음을 실감했다.

강가와 맞닿아있는 바위 위에서 가져온 빵과 후무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오리들이 내 앞으로 떼 지어 평화로이 둥둥 지나갔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복잡하고 힘들게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02 Leura Cascades

버스를 타고 Leura에서 내려 구글맵을 켜고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평범한 호주 동네였는데 걷다 보니 점점 인적이 드물어져 갔다. 아무도 없고 숲 속이 펼쳐지기 시작하니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땅을 잘 살피며 걷는데, 양 옆에서 무언가 푸드덕 날았다. 호주 앵무새였다. 낯선 남자 하나만 있었더라면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을 텐데, 너희라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어떤 가족이 지도를 살피며 길에 멈춰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길을 물어왔는데, 나와 목적지가 같아 나의 구글맵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가면 되고, 날 따라와도 돼. 거기서 봐!'

부부는 고마워하며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가던 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부부의 꼬마아이가 졸래졸래 나의 뒤를 쫓아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산길이 한결 산뜻해졌다.

지도를 따라 도착한 Leura Cascades는 작은 폭포여서 아늑한 느낌이었다. 웅장한 산의 모습을 기대하고 하이킹을 하던지라 크게 감동이 있지는 않았다. 그 산은 곧 만나게 되겠지. 짧게 머무르고 다시 산길을 걸었다.


03 Katoomba- Three sisters, Scenic world, Katoomba falls

Leura에서 Katoomba로 향하는 트래킹을 한 시간쯤 했을까? 숨이 탁 트이는 절경을 마주했다.

유명한 관광지여서인지 갑자기 사람들도 북적였다. 관광지들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블루마운틴은 정말 꼭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체감했다.


04 Accommodation, Katoomba main street
Katoomba Falls

Katoomba Falls로부터 십오 분 정도를 걸었더니 숙소가 도착했고, 오후 다섯 시에 체크인을 했다. 비수기여서인지, 일요일이어서인지 나만 묵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숙소는 굉장히 조용했다. 아침에 나가기 직전 급하게 고른 곳이었는데 꽤나 마음에 들었다. 1인실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조용히 푹 쉬고 싶었는데 숙소는 정말 조용했다.

05 Katoomba main street, Coles, BWS

먹은 게 빵과 후무스밖에 없었는데 온종일 하이킹을 하다 보니 배고픈 줄도 몰랐다. 숙소에 들어오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으로 먹을 것만 사 오려고 메인 스트리트로 나갔다. 대형 슈퍼마켓 Coles에서 망고와 바나나 두 개, 그리고 Liquor shop인 BWS로 가서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골랐다. 근처 Brewery에서 맥주도 한 잔 할까 하다가 그냥 숙소에서 편하게 먹기로 했다.

오후 7시 40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로제 스파클링과 망고를 즐기기 시작했다. 친구와 영상통화도 하고, 얼큰하게 취해 들뜬 기분으로 오늘 찍은 영상과 사진을 돌아보며 하루를 더 되새김질했다.

술은 여행을 더 로맨틱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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