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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Jan 22. 2023

즉흥 시드니 주말여행 2/2

두 번째 하이킹, 비건 된장찌개 14-15.Jan.2023

2일 차, 일요일 아침.

카툼바에서 조금 더 깊숙한 산속, 블랙히스(Black Heath)로 향하는 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공원(Black heath gardens)을 가로질러 평범한 작은 마을을 걸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걸으니 가고자 했던 정원(Campbell Rhododendron Gardens)에 도착했다. 입구라고 적혀있지 않아 구글맵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고요했다. 분명 실외인데 실내 같은 느낌도 어딘가 있었고 사람도 단 한 명 없었다. 머리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약간 무서웠다. 자연에 압도될 때 작은 존재가 되는 이 느낌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한껏 느끼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벌레에게 작게 한 방 물렸다. 그들의 사유지에 마음대로 들어간 인간은 할 말이 없다. 어제 본 블루마운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광경을 보고 싶었다. Govetts leap lookout을 향해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조금 지루해질 뻔 하니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Good morning'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도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Morning' 하고 인사를 건넸다. 주고받는 미소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George Phillips lookout

숨통이 트였다. 오길 정말 잘했다. 어제 봤던 블루마운틴의 Three sisters와는 또 다른 장엄함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더 좋았다. 산과 맞닿아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챙겨 왔던 바나나 한 개를 먹기 시작했다. 매일 이렇게 산을 보면서 식사를 하면 있던 병도 다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다르게 이 산은 길을 걷는 내내 귀 주변에 왜앵-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팔을 휘휘 내젓는데, 소리의 진동이 꽤나 진한 벌레가 귀 옆을 맴돌았다. 등에 소름이 돋으며 반사적으로 카디건을 들고 있던 내 팔이 그 벌레를 쳐냈다. 그 벌레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앗, 이러려던 게 아닌데. 어떤 생물체였는지 확인하려고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벌이었다. 꽃을 옮겨 다니며 꽃가루를 나르는, 열심히 내내 죽어라 일하면 그 벌꿀을 모조리 인간에게 빼앗기는 그 몸집이 작은 벌. 이유 없이 사람을 굳이 먼저 쏘지 않는다는 그 벌.

다행히 죽지는 않았고 쇼크를 받은 모양이었다. 몸과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벌에게 나는 그저 생명에 위협을 가한 맹수였고 포식자였다. 그들의 사유지에 내가 마음대로 들어와 해를 끼쳤다. 정말 미안해 너희는 잘못한 게 없어.

아마 이 선명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겠지.


등산객 두 명이 멀리서 걸어왔다. 다음 목적지가 없었던 터라 말을 걸며 어느 쪽으로 가면 좋을지 물었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절벽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친절하게도 내가 물을 챙겨 왔는지도 덧붙였다.

길을 떠나기 전 돌아본 바닥에 그 벌은 없었다. 다시 훨훨 날아간 것이기를 바랐다.


산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빨강 파란색이 배색된 앵무새들이 근처 나무에 앉아있었다. 하얀 앵무새는 집 근처에서도 자주 보았는데 못 보던 새들이 보여 반가웠다. 산 근처에 많이 모여사는 모양이었다. 조심조심 돌계단을 내려가다 고개를 들었는데,

Bridal Veil Falls

휴대폰에는 담기지 않는 장관이 펼쳐졌다.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졌고 절벽에서는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난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우와 들개를 포획하기 위해 약을 쳤으니 주의하라는 문구가 있어 흥을 깼다. 인간이 관여하지 않아도 잘 유지되는 생태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니. 개체 수 조절이니 뭐니 하며 생태계를 교란하며 약을 치고 포획하고 죽이는데, 사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한 종은 인간이다. 다시 한번 인간의 오만함에 몸서리를 치는 순간이었다.


다시 숙소가 있는 카툼바로 돌아갔더니 점심시간이었다. 우연히 발견했던 한식당으로 발길을 향했다. 유리벽에 붙어있던 메뉴를 둘러보는데 스태프가 나와 인사를 건넸다. 비건 옵션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비건 메뉴판도 따로 있다고 했다. 아, 한식도 그리웠는데 오늘은 여기다.  좌석도 아늑한 곳으로 지정받아 메뉴를 둘러보았다.

비건 메뉴가 따로있어 고르기 편했다.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었지만 바다동물(해물)이 들어있어 건너뛰고 채수로 낸 된장찌개를 골랐다. 담백하고 부담 없이 잘 넘어가서 밥 한 톨, 재료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정말 맛이 다를 게 없는데. 잘 살고 있는 새우나 멸치를 대량으로 잡아다 국물을 우려내고, 육체의 그 살점 한 부분을 넣기 위해 돼지를 잡아 죽일 필요가 절대 없는데. 한국도 음식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문이 닫아 구경하지 못했던 상점들을 구경했다. 집에 수저 받침대에 없어 사려했던 찰나였는데, 귀여운 디자인을 발견해 두 개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스프링우드(Springwood) 역 근처에서는 장식품으로 내 책상 위에 올려둘 귀여운 기념품도 건졌다.

많이도 걷고 생각하고 느꼈던 이번 주말여행. 이틀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고 내일 다시 출근을 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뭔가 오랜 시간의 휴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면 이 경험은 하지 못했겠지. 더 자주 돌아다니고 경험하고 기록해야겠다. 다음 주에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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