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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27. 2021

피정복 국가의 정신승리?… 칭기즈칸이 중국인?

칭기즈칸에 의해 나라가 망했던 중국… 오늘날엔 “칭기즈칸이 우리 영웅”

‘종신집권’ 확정 이후 제2의 칭기즈칸이 되고 싶은 것이 시진핑의 ‘꿈’

중국인이 쓴 칭기즈칸 평전엔 ‘칭기즈칸은 중국인이 확실’ 주장


“우리는 몽골 국적의 세계적 거인이었던 칭기즈칸이 중국인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역사학자 구워 워롱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칭기즈칸이 중국인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윤동주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에 버금갈만한 턱없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은 무려 20년 넘게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인 주야오팅이 쓴 칭기즈칸 평전에도 칭기즈칸이 중국이라는 주장은 반복돼 나오는데 주야오팅은 “몽골족은 중화 민족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 때문에 칭기즈칸 역시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중국인들은 대체로 북쪽 변방에는 오랑캐들이 산다고 했는데, 그들 오랑캐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서도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내놓는 것을 보면 ‘정신승리’라는 설명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심지어 칭기즈칸이 지배했던 시기 중국인들(한족)은 4등 시민으로 분류됐었는데도 말이다. 정복당한 국가 중국이 오늘날 보이는 칭기즈칸에 대한 호의를 과연 대국 다운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발로로 해석해야할지, 아니면 동아시아 역사 깡패국으로서의 ‘세력과시’로 해석해야할 지 아연해진다.

▶“칭기즈칸은 몽골인이에요”= 몽골에 갔을 때 울란바타르 호텔에서 만났던 한 몽골 사람은 내게 “칭키즈칸이 몽골인이에요”라고 말했다. ‘당연한 것을 왜 말하느냐’고 묻자 “중국 사람들이 칭기즈칸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힘이 세지다보니 칭기즈칸을 중국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에 들은 바로는 몽골 사람들이 가장 듣기 거북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냐?’는 질문이라고 한다. 구글의 주요 질문에도 ‘칭기즈칸이 중국인일까’라는 질문 항목이 있는 것을 보니 중국의 어이없는 주장의 역사가 꽤 깊은 모양이다.

찾아보니 중국의 ‘칭기즈칸=중국인’ 주장은 역사가 꽤나 깊다. 중국 문화혁명기의 문호 루쉰은 자서전에서 “스무살이 됐을 때 우리의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했었다. 그 때가 우리나라(중국)의 최전성기였다고 배웠다. 그러나 스물다섯살 때 우리나라의 최전성기라고 배웠던 그 때가 사실은 몽골인이 중국을 정복해 우리를 노예로 만들었던 때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썼다. 1936년에 사망한 루쉰이 살아있을 때조차 중국 내부에선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1200년대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기에 그리고 70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몽골인들에게 당했던 중국인들의 기억이 소멸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송-원-명-청으로 중국의 역사가 이어지니 몽골인이 중국을 집어삼켰던 원나라 역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몽골이 중국을 정복하고 중국인들을 노예로 만들었을 때의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면 비록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중국인들 입장에선 다시 화가날만한 구석들이 적지 않다. 몽골인들은 철저하게 중국인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통치를 위해 민족 등급제를 실시했다. 가장 상층에 몽골인이 1등 시민이고, 그 다음이 색목인, 그 다음이 중국인(북방 한인), 가장 낮은 4등급이 남중국인(남송인)이었다.

색목인은 오늘날로 치면 투르크계나 티베트계 사람들인데, 몽골 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때조차 몽골인은 100만명이 안됐기에 색목인들로 하여금 넓디넓은 제국 통치에 필요한 중간 간부 역할을 몽골 제국은 그들에게 맡겼다.

가장 등급이 낮은 남송인들은 오늘로 치면 황하강 이남의 그러니까 상하이 거주 민족의 선조들인데 그들은 대체로 노예들이었다. 3등급과 4등급 그러니까 오늘날 중국인들의 선조들은 칼이나 활을 소지하는 것도 금지됐는데,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위험분자들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고려인은 3등급으로 분류됐었는데 고려 역사서엔 ‘고려인을 색목인과 동급으로 취급해달라’는 외교 문서도 발견된다. 고려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3등급과 2등급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지는 중국인들의 몽골 사랑, 특히 칭기즈칸에 대한 사랑은 노예로 살았던 이들이 자신들을 정복했던 정복자에게 보내는 구애의 몸짓 유사한 것이다. 전 세계 어느 역사학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칭키즈칸=중국인’ 주장임에도 여전히 중국 공산당은 돈을 풀어 역사 왜곡을 시도한다. 이쯤되면 중국 공산당 우두머리들의 정신감정 의뢰가 필요한 것으로 해석된다.

▶‘칭기즈칸’ 단어 쓰지마= 2020년 10월 중국 공산당 주도로 벌어진 전시회 불발 사태는 칭기즈칸에 대한 중국인들의 외사랑·짝사랑이 여전히 상당함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프랑스 소재 낭트 역사박물관(Nantes History Museum)은 칭기즈칸(1162년~1227년)을 다룬 전시회를 준비했는데 중국 정부가 몇가지 요구를 해왔다. ‘칭기즈칸’, ‘몽골’, ‘제국’ 등 단어를 전시회 기간 중에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단어 사용 금지 요청은 전시회에 필요한 팸플린, 책에도 위 단어들을 사용치 말라는 것이었는데 칭기즈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칭기즈칸 전시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물관 측은 전시회 취소를 결정했다.

중국이 칭기즈칸의 중국인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시진핑의 최대 업적으로 후대에 평가될 ‘일대일로’ 사업과 관계가 깊다.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동서양 무역길을 만들었던 몽골제국의 정책 행보가 시진핑의 일대일로 사업과 맥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을 지배했던 원나라마저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킨 뒤 몽골족이었던 칭기즈칸을 자국 국민으로 만든 다음 ‘제 2의 칭기즈칸’이 되고 싶은 것이 오늘의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이미 헌법을 개정해 종신지위에 올라있다. 소위 죽을때까지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되는 종신통령이 된 것이 오늘날의 시진핑이다. 이 때문에 과거 중국의 역사의 일부인 원나라 시절 대제국을 중국이 건설했듯, 오늘날에도 그 영광을 다시한번 재현하겠다는 것이 칭기즈칸의 중국인화에 중국 공산당이 매진하는 이유다.

▶조용한 ‘몽골’… 이유는?= 자국 최고의 영웅 칭기즈칸을 중국인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웃 국가 중국에 의해 강행되고 있음에도 몽골은 상대적으로 대응이 소홀하다. 칭기즈칸은 말그대로 몽골의 영웅이다. 몽골 화폐 투그릭의 모든 지폐에는 칭기즈칸 초상화가 그려져있고, 수도 울란바타르의 정중앙 광장엔 거대한 칭기즈칸의 좌식 동상이 세워져있으며, 울란바타르로 들어가는 국제공항의 이름은 물론 몽골 최고의 보드카 이름도 칭기즈칸이다. 이에 비해 몽골 정부의 대응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여기엔 슬프게도 몽골 경제가 압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배경이다. ‘종신통령’ 시진핑에 잘못보였다간 어떤 경제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몽골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광업으로 국가 경제의 21.6%를 광업부문이 차지한다. 광업 가운데 상당 부분은 석탄인데 몽골로부터 석탄을 수입하는 주요국은 중국이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몽골 석탄의 비중은 60%에 이른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국-몽골 국경이 막히는 사태가 빚어졌는데, 이는 그대로 몽골 GDP를 뚝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 중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1달간 석탄 수출이 막혔는데 이로 인해 몽골이 입은 수출손실은 2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몽골의 경제성장률도 -5.8%로 뚝 떨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탓이 크겠지만, 구조적으로 몽골의 대외 경제는 중국 의존적이다. 그러다보니 몽골 정부 차원의 칭기즈칸 지키기 움직임은 가시적이지 않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8년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가 몽골 학계의 가장 최근의 반발이다. 당시 촐몬 소드놈 울란바토르대 부총장은 “중국은 ‘몽골국’을 옛날부터 중국의 일부분이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기원전 3세기, 즉 흉노제국시기부터 몽골과 중국 양국의 국경선은 ‘만리장성’에 의해 결정됐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세운 원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몽골제국의 한 부분이었다. 이것을 중국의 소수민족이 국가를 통일한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소련도 칭기즈칸 지우기?=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산화된 국가는 소련이다. 두번째로 공산화된 국가는? 몽골이다. 몽골의 인구는 1900년대 초 100만명 가량에 불과했는데 소련의 영향을 받던 몽골은 러시아 혁명 이후 처음으로 공산화의 길을 걸은 두번째 국가다. 그만큼 소련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았던 것이 20세기 소련과 몽골 사이의 관계였다. 심지어 몽골은 러시아의 알파벳인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문자 기록 방법 역시 공산화 영향이 컸다.

몽골 입장에서 억울한 지점은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몽골에선 사실상 칭기즈칸이란 역사적 인물이 소멸될 뻔 했다는 점이다. 학교에선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 마저 금지됐다. 소련이 이처럼 칭기즈칸이란 단어조차 사용치 못하게 했던 이유는 몽골 민족주의가 광범하게 퍼질 경우 소련 영향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진 시기는 1990년 구소련 붕괴후다. 이후 몽골은 칭기즈칸의 이름을 따서 울란바타르로 들어가는 국제공항 이름을 붙였고 몽골 화폐에 칭기즈칸이 들어가게 된 것도 몽골 민주화 이후다.


▶중국의 ‘칭기즈칸=중국인’ 주장 요약

▷몽골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칭기즈칸은 몽골족 ▷따라서 칭기즈칸은 중국인 ▷몽골족은 대대로 중국 땅에서 살았음 ▷원나라는 한나라 왕조 계승 ▷칭기즈칸 유럽 정복 때가 중국 최대 번성기

▶몽골측 반박

▷몽골은 중국 소수민족 아님 ▷중국-몽골 국경은 너네가 세운 만리장성 ▷원나라는 몽골 제국의 일부분 ▷한족놈들 몽골족의 노예 ▷원나라는 한나라를 멸망 시킴 ▷유럽도 칭기즈칸이 몽골인임을 알고 있음 ▷억지주장은 중국 내부용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칭기즈칸은 중국인’ 주장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oct/14/china-insists-genghis-khan-exhibit-not-use-words-genghis-khan

▷중국 역사학자 구오 워롱은 “칭기즈칸은 확실이 중국인” 주장

https://www.jeremiahjenne.com/the-archives/2018/4/24/from-the-creative-history-files-genghis-khan-was-chinese

▷칭기즈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0가지

https://www.history.com/news/10-things-you-may-not-know-about-genghis-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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