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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로빈 Feb 14. 2021

간단 리뷰 - 2월의 영화와 드라마들




간단 리뷰 - 2월의 영화와 드라마들

공식 포스트로 하나씩 나누기엔 쓸 말이 많지 않고

아예 안 쓰자니 아쉬운 콘텐츠들에 대한 토막 리뷰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 총 8편)

2021년 기준 왓챠에서 시청 가능

키워드 : 추억, 판타지, 호흡이 긴 시리즈물, 작품이랑 같이 성장하는 배우들



해리포터처럼 호흡이 긴 시리즈물의 경우는 다시 한번 몰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20대의 끝에 와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콘텐츠를 한번 다시 보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씩이나 마련하지 않으면 도저히 한 번에 쭉 몰아서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품이 많이 드는 콘텐츠인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적었던 일기장을 처음부터 쭉 몰아보는 기분 정도일까. 어쨌든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는 데에 성공해서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본편이 상영되던 때에 감상한 이후 이렇게 한 번에 몰아서 감상한 적은 처음이라, 나름대로 여러 군데에서 울컥울컥 하는 기분을 느꼈다. 전부 다 보고 나니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되기도 했고 이대로 자연스럽게 기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두는 것이 아쉽기도 해서, 이 글을 빌어 스물아홉이 되어서 본 해리포터에 대한 감상을 조금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번에 해리포터를 감상하면서, 나는 나를 포함한 90년대 생들이 왜 이토록 해리포터에 열광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한국 나이로 10살이면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다. 그 무렵이면 본인의 가정적 배경, 본인을 둘러싼 한국이라는 곳의 분위기, 학교라는 시스템,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앞으로의 진로 등에 대해서 아주 어렴풋이나마 구체화가 이뤄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사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얼추 예상이 가는' 나이가 된다는 뜻이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명료해지는 경험은 성취의 경험임과 동시에 하나의 상실이기도 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만화 같은 공간으로서의 현실세계는 없어지고, 대신 조금씩 가까워지는 어른으로의 성장만이 온몸의 감각으로 선명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도 조금씩 진행되는 나이가 바로 10살 언저리다. '조금 잘 노는 애', 또는 '인기 없는 애', '평범한 애'... 인간 유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유형 속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나이. 스스로의 특출 나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점점 자신이 만화 속 주인공과 달리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까지도 인지하게 되는 나이. 10대로 들어서는 그 시절의 아이의 내면은 그래서 보기보다 굉장히 복잡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 와중에 안경 쓴, 평범한 소년이 마법이라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데다 사실 마법세계에서는 굉장히 부자고,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의 중심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해리포터는, 한국의 이제 막 10대로 들어서는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안 현실'과도 같이 느껴질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현실'의 바로 근처에는 이런 환상적인 세상도 있다고 말하는, 해리포터 속 생생한 스토리텔링은 10대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현실세계에 대해 다시 애정 가득한 상상력을 팽창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살에서 10살로 넘어가는, 그것도 10살에 아주 임박한 4분의 3 지점에서, 해리포터는 '머글'로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전혀 다른 그 만의 네버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해리포터는 피터팬의 좀 더 진보한 후손이면서, 전 세계 10대 아이들의 상상세계를 대표하는 영웅인 셈이다. 엄격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어른들과 자신을 출신과 혈통, 재능으로 판단하는 세상을 악당으로 만들고, 그 악당에 맞서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해리포터의 여정은 긴 호흡에 걸친 자아실현 과정이기도 하고, 또 어린 시절 누구나 느꼈던 어른들에 대한 근원 모를 거부감을 물리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서사에서 우리는 함께 웃었고, 함께 뿌듯해했으며,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해리포터는 곧 우리 자신이었고, 또 상상력으로 맺어진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 (일본 드라마, 총 12부작)

2021년 기준 왓챠에서 시청 가능

키워드 : 퀴어, 자존감, 성장물, 로맨틱 코미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다치는 자존감 문제를 가지고 있는 30세의 청년으로 그려진다. 그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동정'이라는 단어는 그가 30살로서 지니고 있는 사회적 입지나 성취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키워드로 사용된다. 서른이 되도록 연애 경험, 사회적인 성취도,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 중 어느 것 하나도 완성 짓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의식은 아다치가 스스로를 꾸준히 나쁘게 평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다른 퀴어 소재의 드라마, 영화와 달리 바로 이 아다치라는 청년이 지니고 있는 자존감 문제로부터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그가 서른까지 동정을 유지한 덕에 생겨난 특별한 마법능력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게 해주는 능력. 그런데 너무 뛰어나고 얼굴까지 잘생긴 데다 성격도 좋은 동료직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다치는 그 마음을 받아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나 같은 것을 좋아할까'라는 고민을 한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는 퀴어 소재의 콘텐츠가 주로 강조하는 생물학적 성이 같아서 벌어지는 내면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스스로를 그만큼 애정 해본 적이 없어서 벌어지는 이슈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아다치가 자신을 좋아하는 쿠로사와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퀴어에 대한 편견을 대입하거나, 그가 소수자적인 텍스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저, 오롯이 쿠로사와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갈등하고, 자신이 그만큼 괜찮은 사람인가에 대한 반문을 거듭하면서 점점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퀴어라는 소재를 불필요하게 희화화하거나 편견적으로 소비하는 일 없이, 아다치와 쿠로사와 두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포용에 집중하는 세상 무해한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마법을 소재로 하는 만큼 태생부터가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특히나 비현실적인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적극 지지하고 시종일관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는 주변 인물들일 것이다. 대표적인 퀴어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하는 엘리오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현실세계는 여전히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임이 나타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아다치와 쿠로사와가 마음먹고 사귀기만 하면 그 뒤로는 쭉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있는 듯이 그려지면서 그야말로 만화적인 세상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시종일관 웃음기 가득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실제 공간에 아다치와 쿠로사와가 하트를 주고받을 곳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해피투게더 리마스터링 (2021)

2021-02-14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키워드 : 왕가위, 홍콩 누아르, 감성, 색감, 퀴어, 스타일리시한 영상미, 애증으로서의 사랑


왓챠에 왕가위 영화가 전부 구비되어있던 시절에 이 영화를 홀린 듯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거의 2년 정도만에, 노트북 화면이 아니라 큰 스크린에서 영화적 경험을 거쳐서 제대로 만난 이 영화는 내가 처음에 느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우아한 구석이 있는 영화였다. 화양연화, 중경삼림, 그리고 이 해피투게더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저마다 다른 사랑의 결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랑에는 풋풋한 면도 있고, 유통기한을 만 년으로 하고 싶을 정도로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어 지는 때도 있으며, 때로는 죄의식과 연결된 감정이 들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은 안되지만 내가 할 때는 어쩐지 숨 막히게 로맨틱한 면도 있다. 또, 같이 있어야 더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같이 있을 때 더 외로운 감정이 들게 만드는 면도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영화 속 색채가 가진 화려함만큼이나 그 결이 두텁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야후와 보영의 관계는 사랑의 감정 중에서도 애증,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랑, 그 자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함께여야 하지만, 개인으로서 행복하게 자립하기 위해서는 꼭 이별해야만 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다시 시작'하기로 하는 시점, 그 이후로는 쭉 서로가 언제 떠나갈지 걱정하거나 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파멸시키기 직전까지 가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계속 병들게 하거나 또는 계속 서로만을 집착하게 만들면서 돌아가야 할 고향인 홍콩과 둘이서 가려고 했던 이과수 폭포, 둘 중 어느 곳도 가지 못한 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갇힌 삶만을 반복한다. 두 사람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두 사람이 함께이기를 포기하고, 혼자만의 힘으로 다음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끝맺지 못하고 계속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그저 매번 시작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결국 매번 같은 결말로 다다를 수밖에 없다. 늘 보영의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던 야휘가 홀로서기를 다짐하고 행동에 옮김으로써, 두 사람이 봉착했던 악순환은 결국 깨질 수 있게 됐다. 보영은 영영 재시작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제대로 된 상실을 경험하는 성장을 맞이하게 되었고, 야휘는 보영을 보살피고 구속하려던 스스로를 모두 버림으로써 결국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벗어나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동안 음울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흘러나오던 탱고 음악은 두 사람이 완전한 결별을 이룩한 뒤에 끝내 '해피 투게더'라는 경쾌한 밴드 음악으로 바뀐다. 어떤 사랑은 끝맺음으로부터 행복이 피어날 수도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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