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6화
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7화
물놀이를 하다가 점점 추위를 느끼면 우리는 비치타월을 감싸며 몸을 녹였다.
비치베드에 누워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눈을 감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치 그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숨을 타고 흩어지며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걱정도 복잡한 생각도 모두 내려놓고 오롯이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계속해서 이곳이 너무 좋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혹시 나만 좋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늘 "좋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속에 얼마나 깊은 만족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정말 좋으셨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 기분을 전하고 싶어 하셨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할지 고민하시다가 결국 여기저기 통화를 하며 "너무 좋다"라고 연신 이야기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너무 자랑하면 다른 사람들도 가고 싶어질 테니 조금만 이야기하세요"라고 말했지만, 엄마에게는 여행 자체가 커다란 기쁨이었던 것 같다.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엄마에게는 소중했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반응을 보며 나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졌다. 아빠도 엄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셨다.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지 않으시는 분인데,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각도에서 엄마를 찍으셨고, 엄마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포즈를 취하셨다. 사진 속 엄마의 얼굴에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빠도 엄마처럼 이 순간을 깊이 즐기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리조트에는 총 세 개의 수영장이 있었는데, 나는 미끄럼틀이 있는 수영장으로 가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함께 가자고 설득했지만, 아이들은 "그냥 여기서 놀고 싶다"며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가보면 정말 즐거울 거야!"라며 상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예온이는 나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예준이는 여전히 거부했다.
예온이는 처음에는 낮은 미끄럼틀부터 천천히 적응하더니 금세 재미를 붙이고 신나게 탔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있는데, 결국 예준이도 우리를 따라왔다. 나는 미끄럼틀이 재미있으니 한 번 타보라고 했지만, 예준이는 선뜻 나서지 않았다. 왜 타지 않으려는 걸까? 재미있을 텐데 아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 예준이는 예온이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내려올 때 미끄럼틀 끝까지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이제 탈래"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미끄럼틀 끝에서 몸이 바닥에 닿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미끄럼틀을 탄 예준이는 결국 즐겁게 놀았지만, 오래 타지는 않았다. 나도 직접 타보니 경사가 완만해 속도감이 부족해서 조금 밋밋했다. 아이들이 무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도, 너무 천천히 내려오니 흥미를 금방 잃은 듯했다.
한참을 놀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부모님께 점심은 어떻게 할지 여쭤보니, 별로 배고프지 않다고 하셨다. 서울에서도 아침과 이른 저녁, 하루 두 끼만 드시는 습관이 있으셔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함께 점심거리를 사러 리조트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동할 때는 역시나 카트를 타고 내려갔다.
편의점은 리조트 근처에 하나뿐이라 가격이 꽤 비쌌다. 아내는 부모님도 혹시 드실까 봐 컵라면과 맥주, 과자, 물을 넉넉하게 사자고 했지만, 나는 "엄마 아빠는 안 드실 거야"라며 두 개만 사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넉넉하게 구매했다.
카트를 타고 돌아와 부모님께 컵라면을 드시겠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 순간 짜증이 났다.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베트남 화폐 단위가 커서 조금만 써도 큰돈을 쓰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 동안, 나는 문득 '이건 별일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까지 와서 이런 사소한 문제로 아내에게 괜히 화를 낸 것이 미안해졌다.
아이들이 라면을 먹으러 오기 전에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아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괜히 돈을 낭비했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 표정이 좋지 않음을 아이들은 눈치챘는지, "라면이 참 맛있다"며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예준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몫까지 자신이 먹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보니 가족들에게 더 미안해졌다.
이 여행을 통해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배워보려 했지만, 여전히 나는 긴축하고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변화란 쉽지 않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