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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시장과 작은 선택들

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23화)

by 몽쉐르

낯선 오토바이 익숙해지기까지

나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무엇보다 가족들을 태우고 안전하지 않은 탈것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긴장으로 가득 찼다. 이번에는 더더욱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누가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지? 균형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시속 30km 내외로 오토바이를 천천히 운전했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긴장된 내 마음을 안락하게 감싸주었다. 오토바이를 몰며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여행 중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닫혀버린 로컬시장 그리고 아쉬운 발걸음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 우리 가족은 근처 로컬 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장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두 바퀴 정도 돌았지만 어제 고구마를 팔던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주로 생선을 파는 시장인데, 그런 풍경도 오늘은 볼 수 없었다. 정육점만 열려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던 삼겹살 같은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아 보였고, 비계 없는 부위만 주로 판매되고 있어 결국 고기는 포기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조금 더 멀리 있는 호이안 중앙시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오토바이를 돌리는 길에 문득 내가 제안했다.

“우리, 중앙시장 말고 현지인들이 더 많이 가는 서쪽 시장으로 가볼까?”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기억 속의 시장 그러나 다시 닫힌 문들

서쪽 시장은 내게 특별한 기억이 있는 장소다. 3년 전, 예준이 또래 아들을 둔 쌀국수 가게 사장님과 친분을 쌓았던 곳. 하지만 작년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결국 다시는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던 시장이다.

그런 추억을 안고 다시 찾은 서쪽 시장 역시, 오늘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몇몇 현지 음식점만 운영 중일 뿐, 우리가 원하는 장보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음속엔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이곳까지 왔나? 그냥 중앙시장으로 바로 갈 걸.’

효율성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이 시간이 마냥 낭비처럼 느껴졌다. 괜한 내 확장된 생각이 문제였던 걸까.

사소한 선택에 쓰는 큰 에너지

오토바이 기름이 떨어져가서 주유소에 들렀다. 2만 동을 주유했는데, 겨우 1리터 정도.

3만 동을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주유원이 다가오는 순간 얼떨결에 2만 동만 넣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500원 정도 차이일 뿐인데, 그 사소한 차이로 이토록 고민하고 에너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냥 넉넉히 넣지,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걸까.’ 자책 같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햄버거 하나에 담긴 분위기값

다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예준이가 “햄버거 먹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글 지도에 롯데리아는 검색되지 않았다. 대신 근처 평점 좋은 수제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만 원쯤. 다소 비싼 느낌이 들었지만, 내심 ‘이런 데서 먹는 것도 분위기 아니겠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어쩌면 그건, 비싼 햄버거값을 납득시키기 위한 내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온이는 햄버거를 먹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나는 예온이와 함께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ATM을 찾아 나섰다.

ATM은 왜 이럴까, 다시 고개 드는 걱정

지도를 따라 VP Bank ATM을 찾았지만, 카드가 인식되지 않았다. ‘기계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며 주변 외국인들을 살폈더니, 그들 또한 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 기계가 고장난 게 분명해 보였다. 다른 ATM을 이용할까도 고민했지만, 호치민 첫날 많은 수수료를 낸 경험 이 떠올랐다. VP Bank는 확실히 수수료가 없었기 때문에 꼭 여기서만 뽑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햄버거 가게로 되돌아갔다. 다양한 길을 돌다 보니, 어느새 호이안의 지리를 꽤 익히게 된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메시지

데이터가 되는 휴대폰은 아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따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햄버거 가게에서 와이파이를 잡자마자 도착한 카카오톡 메시지.

“우리가 있는 곳을 잊어버린 거 아냐?”

아차 싶었다. ATM 찾느라 시간이 꽤 흘렀던 모양이다. 나는 당당히 “찾아왔으니 괜찮아”라고 답했지만, 기다렸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다.


햄버거 반쪽 그리고 마음의 균형

예준이는 햄버거를 반쯤 먹은 상태였다. 그걸 본 예온이가 갑자기 먹고 싶다고 했다. 새로 사주기엔 가격도 신경 쓰이고,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서 예준이가 먹던 걸 잘라주었다. 감자튀김도 함께 나눠주었다. 예온이는 “너무 맛있어! 또 먹고 싶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내일 시내 쪽 리조트로 가니까, 그때 또 사줄게”라고 약속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예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오토바이에 올랐다.


시장 속의 갑오징어 그리고 정직한 손길

시장입구 왼쪽 갑오징어

드디어 호이안 중앙시장에 도착했다. 외국인과 현지인이 뒤섞인 활기찬 시장. 입구에 갑오징어가 펼쳐져 있었다. 외국인에게 비싸게 부를까 걱정되어, 아내에게 가격을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멀찍이 오토바이를 주차하며 눈치를 보았다.

“1kg에 10만 동이래.”

“오, 괜찮은 가격 아냐?”

“응, 좋은 거 같아.”

갑오징어를 저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1kg 정도면 얼마 안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가득 올려도 1kg이 안 되자 상인은 9만 동만 받았다. 작은 차이지만 정직함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갑오징어를 오토바이 의자 밑에 넣고 나니 묵직한 그 무게처럼 내 마음도 든든해졌다.


고구마와 비교의 마음

시장 코너를 돌다가 고구마를 발견했다. 어제보다 크고 탐스러운 고구마였다. 2kg을 담았다. 가격은 어제보다 비쌌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도 아내에게 말했다.

“아… 비싸게 산 거 같아.”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어제보다 크잖아. 그냥 잊어버려~”

나는 그 말을 돌아가며 몇 번이고 스스로 되뇌었다.


마지막 비교, 다시 마음의 싸움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빵과 갈비를 샀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고구마를 보게 되었다. 아내는 나를 잘 알아서 말했다.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가격 보지 마.”

하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확인했다. 우리가 산 것보다 조금 더 저렴했다. 순간 또 마음이 살짝 무너졌다. 큰 금액도 아닌데, 마음은 이상하게 자꾸 찌릿했다.


작은 선택의 연속, 그 속에서 배우는 마음의 여유

여행은 늘 새로운 풍경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오토바이 한 대, 기름 500원, 고구마 1kg…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 나는 나의 성격, 마음의 흐름, 그리고 소중한 가족의 표정을 다시금 배운다.

오늘 하루의 이야기들은 결국, 여행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내 마음을 여행하는 과정’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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