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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에서 하루

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27화

by 몽쉐르

숙소에 도착하다

오랜 시간을 즐기고 숙소로 향했다. 체크인할 때 걱정했던 방 상태는 기우에 불과했다. 2019년에 방문했을 때와 똑같이, 숙소는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2층, 부모님은 1층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방은 전날 묵었던 에어비앤비보다 작았지만,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야자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투본강이 이 풍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따뜻한 날씨였다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을 텐데, 차가운 공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잔디밭 의자에 앉아 있으니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평온한 시간은 유독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햄버거와 반미를 찾아서

“나 햄버거 먹고 싶어.”

예온이가 먼저 말했고, 어제 먹지 못한 햄버거가 생각난 듯했다. 예준이도 덩달아 “나도 햄버거 먹을래!”라고 맞장구쳤다.

마침 점심때 근처를 둘러보다 롯데리아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어제 호스트가 추천해 준 반미를 먹어볼까?”라고 물었다. 아내는 흔쾌히 “좋아!”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구글 평점이 4.9점이래.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지?”

그 말에 나도 궁금해졌다. 롯데리아까지는 5분 거리였지만, 부모님과 아내가 먹을 반미까지 사기 위해 조금 먼 거리를 가야 했다. 가족 중 누구와 같이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묻지 않고 “혼자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아마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출발도 전에 이미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롯데리아에서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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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롯데리아에 도착하니, 손님은 거의 없었다. 세트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17만 동, 한국 돈으로 약 9천 원 정도. 단품 가격이 5만 5천 동 정도였는데, 현지인들에게 5만 동이 넘는 식사는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손님이 적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까 여기 롯데리아는 음식 나오는 데 오래 걸린대.”

손님이 없으니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휴대폰을 보며 기다렸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시간을 확인하니 무려 20분이 지나 있었다. 만들어 놓은 버거가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한 사람이 직접 버거를 만들고 감자를 튀기고 모든 일을 다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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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여행 중이었고,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었으며, 혼자라는 자유로움 덕분에 이 기다림조차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미를 사러 가는 길

포장된 버거를 들고 반미집으로 향했다. 스타벅스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외워두었기에, 길을 헤매지 않고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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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타벅스를 지나쳤다. 예상대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관은 전통적인 느낌이 가득했지만, 내부는 여느 스타벅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미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많이 줄을 서 있었다. 작은 가게 안에서는 네 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게트를 오븐에 구웠고, 세 사람은 마치 기계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속재료를 채워 넣었다. 주문한 반미는 불과 몇 초 만에 완성되었다. 마치 작은 반미 공장 같았다.

나는 믹스 반미 네 개와 에그 반미 하나, 총 다섯 개를 주문했다. 개당 3만 동. 롯데리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주문이 나왔다.


맥주 가격에 대한 아쉬움

반미를 챙기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길, 깔끔해 보이는 작은 마트가 눈에 띄었다. 아빠와 아내를 위해 맥주 두 캔을 사기로 했다. 가게 주인은 친절하게 자전거 주차를 도와주었다. ‘참 친절하네.’ 기분 좋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격표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감이 들었지만, ‘얼마나 비싸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가장 저렴한 사이공 맥주 두 개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5만 동입니다.”

순간 멈칫했다. 이 맥주는 대형 마트에서는 8천 동, 일반 마트에서는 1만 5천 동이면 살 수 있는 맥주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개당 2만 5천 동이라니.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1,5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예상보다 비싸게 주고 산다는 생각에 순간 기분이 상했다.

계산대에 올려놓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이거 안 살게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매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고, 더 저렴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선택하지 못한 게 짜증이 났다.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음식은 한국보다 저렴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데, 가끔 한국보다 비싸게 주고 사야 할 때면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곤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맥주 가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내의 한마디

숙소에 도착해 아내에게 맥주 가격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내는 조용히 물었다.

“깨끗한 곳이었어?”

“응.”

내 대답을 들은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깨끗한 곳은 비싸더라.”

그 말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순간의 억울함과 짜증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사소한 일이지만, 아내의 말이 내 마음에 연고를 바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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