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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Jan 12. 2024

홋카이도 설국여행 9

뭐든 처음이 신기하고 흥미진진한데 아칸 국립공원이 딱 그랬다.

죽을 뻔했던 다다미방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까? 이른 새벽에 꼼지락거렸더니 아이들도 따라 잠을 깨는것 같았다. 영하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피곤 했나보다. 그래도 일찍 일어난 덕분에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할 수 있어서 차라리 잘 된거지도 모른다. 따뜻한 온기라도 있었으면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었을테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고 깨자마자 일어나 얼른 옷부터 갈아 입었다. 세수만 대충하고 숙소를 나왔는데 어젯밤 그렇게 몰아치던 눈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아바시리 역 대기실에는 새벽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는데 그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아 보였다. 우리는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 자리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아침을 때웠다. 여행 다니면서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편의점 간편식도 불평없이 잘 먹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첫 해외여행 치고 먹는 것이 부실했는데 그도 그런 것이 이곳저곳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먹는 시간까지 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첫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여행일정을 빡빡하게 짰던 탓도 없지않아 있고, 이왕 다녀오는 건데 하나라도 더 보자는 식으로 컨셉을 잡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맛집을 안알아 본 것도 아니고, 다만 밥 때를 놓혀 브레이크 타임이 걸리거나 주변에 식당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럴때마다 신기하게도 편의점이 보였던 거다. 일본은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 왠만한 식당급이어서 비쥬얼이나 맛에서 전혀 뒤쳐지지 않아 가성비 좋은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배고프면 뭐든 맛있는 법이다. ㅋㅋ


아바시리에서 유빙을 볼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급하게 계획을 수정해야 했기 때문에 아깝지만 호텔 예약금 10만 원을 날려야 했다. 하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칸 국립공원에 와서 보니 가는 곳마다 절경이고, 놀거리가 풍성해서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에코버스가 내려주는 곳마다 우리는 감탄을 연거푸 쏟아가며 이틀 동안 여행했는데도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많아 다음 코스로 급하게  넘어간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절호의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칸에서 하루 더 묵어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아직까지 백조호수에서 노천온천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가와유 온센역에서 다시 에코버스를 탔다. 이오산이 뿜어내는 수증기와 온천수는 마치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듯 해 할 말을 잃게 했다. 압력밥솥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인 소리가 땅 아래에서 뚫고 나오는 광경은 정말이지 지구가 살아 숨 쉬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유황온천 말만 들었지 진짜 노란색 유황과 계란 썩는 냄새가 온 산에 진동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뜨거울 것 같은 위험스러운 그곳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보았더니 솟구치는 물 압력 때문에 들어가기는커녕 바로 뱉어내 버렸다. 이오산에 가면 살아있는 무서운 구멍을 반듯이 보고 와야 한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고탄에서 백조호수를 배경으로 노천탕을 즐기는 것!

에코버스를 타고 고탄에 도착했을 때 호수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정표 하나 없는 오솔길을 혹시나 하며 걸어 갔었는데 갑자기 숲을 벗어나며 탁 트인 겨울 호수가 짠하고 튀어나왔다.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호수 너머 설산이 어림 잡아도 2~3킬로미터는 되어 보일만큼 넓고 큰 호수였다.


드디어 왔구나!!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가 온몸과 마음으로 전해지며 순간 큼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호숫가에 둥둥 떠다니는 백조들이 끼룩끼룩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얼른 차리고 아이들과 백조들에게 먹이부터 주었다. 백조는 생각보다 덩치가 컸다. 거위보다 몇배는 큰 놈들도 있었다. 입을 벌리며 다가오는 그들이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는지 작은 애가 팝콘 던져주는 것을 살짝 망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않고 재미있게 던져주는 오빠를 보더니 곧잘 따라 했다. 그 곳에 있던 백조는 이미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먹이를 달라며 보채는 애완동물처럼 낯설지가 않아 신기했다.

먼 곳에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 호수위로 착륙하는 백조 모습은 놀랍고 멋스러워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힘차게 날갯짓 몇 번으로 큰 몸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도 신기했고 어디 가서 볼 수없을 진귀한 풍경이었다.


아이들이 백조랑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위해 넋 놓고 샷터만 계속 눌러대느라 그토록 간절했던 노천탕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고 있었다. 바로 탈의장에서 준비해 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노천탕에 뛰어들었다.

바위 하나 가운데 두고 나눈 남탕, 여탕은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배려일 테지만 참으로 운치 있었고, 뜨거운 온천 원수량을 조절하는 밸브가 있어서 항상 일정하게 물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자연과 사람의 지혜가 돋보여 정말이지 멋스러웠다.

어쨌거나 너무너무 행복했다.

어젯밤 그 혹독한 추위에 고생한 것이 싹 날아가면서 큰 감동이 밀려왔다.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고 인생이라면 오래 살아볼 일이다.


한참 물놀이 하며 놀다 보니 배가 금방 고파졌다.

주위 인가는 10여 채 정도 있었는데 하나 있는 식당도 문을 닫아 버렸다.

이런 줄 알았으면 간식이라도 들고 올 것을 그랬다. 시간을 보니 에코 버스는 1시간 뒤에나 오는데 그동안 어디서 기다려야 할지 대략 난감했다.

지나가는 차라도 잡아 타려고 큰 애가 길가에서 손을 들어 보았지만 4인 가족을 태울만한 큰 차는 없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한 분은 집에서 눈썰매를 하나 들고 오더니 직접 타는 흉내를 내며 갖고 놀라고 했다. 아이들과 한참 놀았더니 배가 더 고파져서 금방 지쳐버렸다.


예약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미소노 온천 료칸에 4만엔(약45만원)을 내고 체크인을 했다.

어제와는 정말 다른 분위기, 완전 아늑하고 편해 보이는 일본 전통 다다미 방은 가족 모두를 황홀하게 했다.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우리는 차를 한 잔씩 한 뒤 기모노로 갈아입고 료칸 온천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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