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서사에 빗대보니 별일 아닌데?
2020년, 힘들게 대학 졸업장을 타냈다.
2021년,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가 되었다.
2022년, 지역 도서관 매니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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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는 백수다.
20살에 들어간 컴퓨터학과는 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내 낮은 성적을 비관했고 제대로 하는 날이 있다면 굉장히 잘할 텐데 안 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 바빴다.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유쾌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교수님들은 "성적만 좋으면 내 연구소로 오라 할 텐데.."라며 아쉬워했고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았다.
2020년 코스모스 졸업을 한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며 스타벅스에 들어가 바리스타를 시작했다. (뭐.. 스타벅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면 워킹홀리데이를 가도 카페에서 일할 수 있다나.. ) 스타벅스 안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지긋지긋한 코딩도 없으니 한마디로 살맛 났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슈퍼바이저 진급 시험도 봤었다.
2022년 친구의 권유로 동네 도서관 매니저 일을 하게 되었다. 동네 도서관이라 아이들과 늘 함께했고 '매니저쌤'이라며 부르는 아이들 덕분에 일이 재미없어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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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4년, 나는 아직 백수다.
엊그제 면접을 보러 갔다. 나이 질문, 공백기 질문 없이 대화하듯 진행한 면접은 처음이라 그 어느 때보다 합격이 간절했다. 집 가는 길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도 해보고, 달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제발 합격하게 해달라고. 내 간절함과는 달리 불합격 연락을 받았다. 탈락 문자를 받을 때 지하철이었는데 정말 간절했는지 그 자리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스스로를 비관하고 있다 보니 '아니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의천도룡기'를 보면 주인공 장무기는 어릴 적 인질로 잡혀 현명신장이라는 권법 때문에 병들어 겨우 목숨만 유지하며 살았고, 성인이 되어 주방장을 만난 덕에 현명신장 해독법을 얻어 속세로 나오게 된다.
장무기를 빗대어 생각해 보니 '내 삶, 생각보다 순탄한지도..?'라는 생각을 했다.
여타 영웅서사를 보면 영웅들 대부분이 죽기 전까지 힘든 일을 겪은 후 영웅으로 거듭난다. 지금 나의 상황은 이들에 비하면 별일이 아닌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 다시 하면 되니까 어딘가 내 자리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