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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Sep 25. 2022

남편 몰래 보톡스 2편

"마스크 좀 내려보시겠어요?"

손에는 내 증명사진을 들고 얼굴을 확인하려는 주민센터 직원 앞에서 나는 쭈뼛대며 마스크를 슬쩍 내렸다. 내려진 마스크를 따라 고개도 덩달아 내려갔다. 창피했다.




개명 후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려면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진관에 갔다. 후기가 좋은 곳으로 고르고 골라 간 곳이었다.


찰칵찰칵. 순식간에 사진을 찍고 컴퓨터 앞으로 불려 갔다. 똑같아 보이는 사진들 중에 하나를 고르니 사진사는 즉시 현란하게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우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주근깨가 사라지고 삐쭉 나온 잔머리가 사라졌다. 거기까진 좋았다.


사진사가 물었다.

"턱은 V라인이 좋으세요, U라인이 좋으세요?"

내 턱을 깎겠다는 뜻인 것 같아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이대로 놔두라고요?"

믿기 힘든 말을 듣기라도 했나. 깜짝 놀란 사진사는 다시 한번 내 턱을 마우스로 콕 가리키며 이 부분을 그냥 두라는 뜻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진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럼 U라인으로 해드리겠다면서 또다시 마우스를 바삐 움직였고 그녀의 손을 따라 내 턱은 갸름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져 갔다.

"아니 그만요! 이제 더 고치지 마세요!"

보다 못해 말렸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손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바쁘게 놀리던 손을 멈춘 사진사가 또 수정하길 원하는 곳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곳도 고쳐달라 하지 않았는데, '' 원하는 게 없냐니.

어이가 없어 소심하게 항의를 했다.

"저기 그런데 턱을 너무 깎아서 이건 제 얼굴 같지가 않은데요?"

"아니에요. 원본 사진을 먼저 보셔서 그러는 건데, 오히려 수정한  지금 이 사진이 본인 얼굴이랑 똑같으세요. 사진은 실물보다 부하게 나오시네요."

"이게 육안으로 보는 제 얼굴이랑 더 닮았다고요?"

"네^^"


어쩔 수 없이 인화된 사진을 받아 들고 나와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가 정말 이렇게 생겼나. 하지만 도무지 어색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하나 같이 똑같은 반응이었다.

'너의 느낌은 있는데  같지는 않.'

그럼 그렇지.




진과 얼굴을 대조하느라 몇 번을 번갈아보는 주민센터 직원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나잇값 못하고 뽀샵으로 얼굴을 반토막 낸 주책 덩어리라고 흉을 볼 것만 같아서.


왜 그  사진사는 내 턱을 깎아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내 얼굴이 그렇게 못생겨 보였을까.

한동안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던 나는 결국 결심했다. 사진에 얼굴을 맞추기로. 내 턱이 그렇게나 못생겼다면 그래, 진짜로 없애주마!




그래서 거의 칠팔 년 만에 턱 보톡스를 맞았고 한 달이 지나자 사진 속 얼굴과 제법 비슷해졌다.


 그런데 작아진 얼굴을 보는 내 마음이 어째 예전 같지 않다.

좋은 건 아주 잠시 뿐. 다시 내 원래의 얼굴로 돌아갈 때 느끼게 될 감정이 떠올라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사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사라졌던 턱이 다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해진다. 이건 내 얼굴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는 왜 이렇게 생겼나 화도 난다.

내 얼굴에 적응기간이 필요해진다.


병원에서는 보톡스 효과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니 3개월 주기로 와서 맞으면 좋다는 말로 유혹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십 년 전엔 30만 원이던 게 이번에 가보니 3만대로 가격이 확 내려가 있어서 그 순간엔 정말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쎄. 아마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보톡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전에야 판에 박힌 미인의 조건이 있었지 지금은 개성과 매력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던가. 증명사진 때문에 순간 욱해서 보톡스를 맞기는 했지만 나는 그동안 내 얼굴에 만족하며 잘 살아왔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람.


달라진 내 얼굴에 눈치 없는 남편은 또 말했다.

여보 요새 예뻐졌다고.

그런 남편에게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그래 지금 많이 봐 둬. 다신 못 볼 얼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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