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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인 Aug 27. 2023

내 능력과 기술로 돈 번지 10년 차.

일에 대한 마음가짐, 돈의 우선순위.

최근 사내 타운홀 미팅의 발표에서도 얘기했듯, 대학교 4학년 시절의 월 소득을 직장인 본업 연봉으로는 아직 넘은 적이 없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정치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영상 일을 병행하며 졸업전시를 준비했다. 전시가 끝나고 2학기부터는 MCN 미디어 커머스 기업에 출근하며 SNS 뷰티 광고 영상을 제작했고, 다른 영상 외주와 사진 보정 외주, 그리고 창업 준비까지 함께 했던 시절이었다. 평범한 대학생 치고는 돈을 꽤 벌었던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더 많이 벌 줄 알았는데(어디서부터 내 인생 잘못된 걸까....)


생각해 보니 내 능력과 기술로 돈을 번지 올해가 딱 10년 차다.

하는 일은 계속 바뀌고 있어 10년 차 디자이너나 10년 차 마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10년 차 성장캐라고는 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는데,
왜 학교 끝나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


나는 ROI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시간 낭비와 돈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낮 동안은 디자인을 배우는데 저녁이나 주말에 다른 일을 하는 게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크몽이 없던 시절, 알바몬에서 디자인, 사진, 영상 관련된 외주를 계속 찾았다. 내가 못 하는 업무가 있더라도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지원했다. 그리고 그 일을 맡게 되면, 혼자 공부하며 해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대학교 저학년에게 회사가 원하는 건 그리 크지 않았다. 이렇게 서비스업이 아닌 기술직으로 일을 하면서 느낀 좋은 점들이 있었다.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내 몸값을 알 수 있음

한 가지 일을 잘 해내면 다른 일이 들어옴

일하는 시간을 단순히 ‘돈을 버는 시간’이 아니라, ‘내 경험치를 쌓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음

그리고 그 일의 결과물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내 작업물’이 됨


일을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돈은 점점 뒷전이 되어갔다. 결과보다 돈을 많이 주는 곳도, 적게 주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돈에 집착하는 순간 내가 시도하지 못할 작업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닥치는 대로 했다. 작업을 하는 그 시간이 재밌어졌고, 작업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성취감이 커졌다. 더 재밌는 작업, 내가 안 해본 작업을 찾아다녔다. 오히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프로그램과 방법론으로 하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깊이는 얕더라도, 자격증 하나 없이도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스콥이 넓어졌다.


10년 동안 정말 다양한 일을 했고 디자인이나 영상 외주뿐만 아니라 내 관심사와 관련된 곳에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지만 내가 얻는 건 성장 경험치재미였다. 학교에 가면 수업이 끝나고 과제를 했고, 지루할 땐 틈틈이 외주 작업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당시 좋아했던 나이키 조던 신발을 사모으기도 했고, 야작을 한다고 거짓말하고 록 페스티벌에 가기도 했다. 졸업 전시 때는 아무래도 일할 시간이 부족하고, 외주를 줄여야 해서 사는 재미가 줄어들 것 같아서, 졸업 작품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로 했다.


헤비메탈의 시각적 특징을 분석한 책 작업. 이게 바로 덕업일치!



과제가 그렇게 많다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재학하며 여러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쓰기만 하는 외부 동아리 활동도 병행했으니까. 학교 수업에 지각하거나 빠지는 날도 많았고, 성적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성적이 좋고 교수님들과 잘 지내는 동기들을 보고 부럽기도 했다.


너 같은 애들은 디자인하면 안 돼.
디자인에 목맨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대학교 1학년 때, 수업 중간에 나에게 디자인을 포기하라며 공개적으로 악담을 한 교수도 있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 공연기획단 활동을 하며 그 수업 과제를 못 해갔으니까. 대신 그 시간에 신촌 차 없는 거리에서 열었던 오프라인 재즈페스티벌에 쓰일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내가 만든 포스터가 신촌 연세로 곳곳에 붙었고, SNS 채널과 기사에 올랐고, 친구들이 페스티벌에 놀러 왔다. 지금 보면 정말 부끄러운 디자인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쓸모'를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성적이 이래서야 대기업은 애초에 포기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대기업의 디자이너는 성적을 많이 봤으니까. 하지만 난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미래 계획 없이 현재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쫓는 나에게,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 학교에서의 이론과 실습은 내가 일하는 거름이 되었지만 목메고 싶진 않았다. 내가 스스로 조금 더 공부해서 외부에 그 능력을 팔아먹으면 대가도 얻을 수 있으니까.


졸업할 때즈음 세상이 점점 바뀌었다. 성적을 안 보는 회사가 많아졌다. 친구들이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변변한 포트폴리오 하나 작업해놓지 못한 나지만 외주를 했던 회사들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그 회사에서 나와 커뮤니케이션했던 분이 이직을 하고, 창업을 하면 연락이 왔다.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일은 점점 취미가 됐다. 그때부터 일하는 마음가짐은 쭉 같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일하는 시간은 '돈 버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난, 내가 돈을 목적으로 살면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조금 더 돈이 급해질 때, 예를 들어 집을 사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 했을 땐 어느 정도 돈에 목적을 두고 일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더 성장하고 경험을 쌓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


뭐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많이 벌겠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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