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제목을 보고 마냥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죽고 싶지만' 은 좀 심각하게 다가오지만, 뒤의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앞의 어두움을 희석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홍색이 주를 이루는 가벼운 터치감의 표지 일러스트 또한 이러한 느낌과 같은 선상에 있다. 작가도 책 디자인, 제목과 어울리는 20대 젊은 여성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자의 실제 병원 상담 치료기를 담은 내용이다. 작가는 우울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고 경도의 우울증이다. 가벼운 우울증이라 별거 아닌 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병의 경중을 떠나 우울한 기분이 들면 똑같이 힘든 것은 양자에게 모두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저자가 앓고 있는 기분부전 장애라고 알려진 이 질환의 증상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심각한 우울증만큼 감당하기에 꽤나 버겁다. 서핑 중에도 이런 우울한 기분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대번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2년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며 내외적으로 침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증상이 가벼워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고 일상도 잘 영위해 나가기 때문에 서로들 눈치를 못 채는 것일 뿐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이들과 내 지인들도 어쩌면 이런 우울감을 남몰래 숨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울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얽히고설킨 심리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그 심정을 토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 고민하거나 심리상담을 받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런 기분이 찾아오면 나만의 동굴로 깊이 숨어들었다. 나의 치부와 약점이 드러날까 봐 숨겼고 대화 분위기가 흐려지고 상대에게 부담을 줄까 봐 꼭꼭 숨겼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무작정 울기도 하고 책, 영화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혼자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꿈 분석 등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저자 또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작가는 나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자신의 내적인 혼란과 깊은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책 목차도 이를 반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몇 가지 살펴보면, 그냥 좀 우울해서요, 저 혹시 허언증인가요?, 왜 날 좋아해? 이래도? 이래도?, 제가 예뻐 보이지 않아요. 등 우회적으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감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그대로 말한다.
책이나 영화 등에서 한 사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분석하거나 발가벗겨서 부끄럽고 거부감이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물론 창작자는 특정한 효과를 내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충격적인 방식을 사용하나 비밀스럽고 은밀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면 진실을 얻었을망정 그에 대한 뒷감당은 상당히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지만 누구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터치가 무겁지 않아 거부감보다 공감이 앞선다. 또 의사와의 상담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담아내어 마치 내가 치료를 받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도 든다.
질투, 허영, 외모에 대한 강박, 인간관계에서의 미숙함, 낮은 자존감,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회의 등, 작가가 겪고 있는 여러 심리적인 문제들은 기분부전 장애라고 확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고민했을법한 문제들이기에 이질감보단 동질감이 더 컸다.
책의 마지막에 '우울의 순기능'이라는 큰 타이틀 아래 앞의 대화체 형식과는 다르게 작가의 경험과 맞닿은 17편의 짧은 글이 실려있다. 일상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집, 회사,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여러 갈등이 주를 이루는 그늘진 에피소드이지만 그 끝은 항상 긍정적인 자기반성으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작가는 우울장애를 겪고 있지만 오히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은 어김없이 찾아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느덧 언제 우울했냐는 듯 다시 떡볶이가 먹고 싶어 지는 자신을 자조하는 작가의 모습은 나의 모습 그리고 많은 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태양만 비췄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어둠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은 피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성숙해가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백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