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이 어릴 때 '코코몽' 만화를 좋아했었다. 칠삭둥이인 데다 저체중으로 태어나 5세 무렵까지는 또래보다 체격이 많이 왜소했다. 밥도 잘 안 먹어서 코코몽을 틀어놓고 먹이면 잘 받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웃으며 만화 보는 새 한 그릇 뚝딱 먹이고 나면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교육적 관점에서는 24개월 이전 영상 노출도, 수동적으로 밥 먹는 습관도 좋지 않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먹여서 체중을 늘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던 것 같다.
코코몽 시리즈 중에 '바보가 된 코코몽'편이 있다.
냉장고 나라를 독차지하고 싶은 세균킹이 어느 날 '바보 머리띠'를 만들어 코코몽의 머리에 씌우려는 계획을 세운다. 감자팡은 "이제 코코몽이 냉장고 나라 최고 바보가 되겠지? 그럼 나는 두 번째 바보다!"라고 통쾌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세균킹의 지시를 따른다. 머리띠를 쓰게 된 코코몽은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 파가 말을 하네?"라고 말하며 실없이 웃기도 한다.
전과 다른 코코몽의 모습에 친구들은 수군댄다. "코코몽이 좀 이상해.", "응, 꼭 바보가 된 것 같아."
영유아가 시청하는 만화 영상의 제목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단어인 '바보'
당시엔 아이들과 영상을 보면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문득 장면들이 뇌리를 스치며 불편하게 느껴졌다.
만약 영상 제목이 '병신이 된 코코몽'이었다면 이 시리즈는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만화 내용에 세균킹의 공격으로 코코몽이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앞이 안 보이는 장면이 나왔다면? 그렇게 만들 리도 없겠지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영유아기 아이들이 그 영상에 그대로 노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전에 알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고, 나이보다 어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불러. 그리고 감자팡처럼 느리고 어눌한 말투를 가진 사람, 세균킹처럼 못되고 똑똑한 애한테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도 '바보'야.
영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판단력이 형성되기 전의 어린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디선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게 '바보'라는 두 글자 카테고리에 분류하도록 인권 감수성 발달의 저해 요소가 돼버린 셈이다. 어쩌면 그 대상이 아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영상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아이들과 함께 시청했던 나도 사회의 '오랜 길들임'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었다.
공식적인 '바보'의 프레임은 사적인 관계에서 "야, 이 븅신아!"라던가, "어이구, 바보야."라고 툭 던지는 말과는 분명 다르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바보'라고 거리낌 없이 지칭하며 희화화하고 소비하는 미디어에 우린 익숙하다. 심지어 영유아가 보는 영상물의 제목에 등장해도 전혀 마음에 걸림이 없을 정도로.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데에 지친 심신을 그들을 보면서 달래고 싶은 걸까?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느려 보이기도 하는 그들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웃음 포인트도 많은데, 굳이 약점을 부각하며 '바보'라고 명명하는 문화에 해맑게 웃는 아기들까지 노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살면서 위안이 될까, 두려움이 될까?
나는 바보가 아니라는 위안 혹은 바보가 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 어디에 무게가 실릴지 모를 일이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파고들었는지 모르지만, 돌아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경계선급 신경다양성 청소년 학교인 '프레네스쿨 별' 김현수 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도 하다. 소년 교도소에서 공중 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 많은 아이가 '빈곤과 장애'로 인해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됨을 알게 되었다. 지적 장애, ADHD, 고기능 자폐 중 충동성과 폭력성이 있던 아이들…적절한 돌봄과 지원이 있었더라면 잘 자랄 수 있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치유와 돌봄을 제공하는 학교의 필요성을 느꼈고,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안 학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어려움을 지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바보'라는 주형틀로 압축시켜 버리는 문화는 한 사람을 범죄의 길로까지 내몰 수 있고, 그 피해는 결국 모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머리에 '바보 머리띠'를 씌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리 악당 세균킹이라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에게 노출하기엔 부적절함을 언젠가 영상물 심의 위원들도, 대다수 국민들도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바보가 된 코코몽> 내 멋대로 수정판, <돌아와, 감자팡!>
세균킹은 냉장고나라를 독차지하고 지배하려고 오늘도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코코몽이 심한 열감기를 앓은 후 갑자기 친구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상한 말을 하며 아기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감자팡에게 듣는다. "흠, 그럼 이 기회에 내가 냉장고나라의 진정한 왕이 되어야겠군!"
세균킹은 코코몽과 친구들의 동태를 살피도록 감자팡에게 지시한다. 감자팡은 싱싱 나라로 가서 코코몽의 집 주변을 감시한다.
"코코몽, 얘가 누구지?"
"음…그 말하는 파네!"
"네 친구 파닭이야!"
친구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고, 아로미가 사진을 하나씩 가리키며 코코몽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는 모습이다. 코코몽이 기억을 하려고 애쓰다가 머리가 아픈지 "아, 그만그만! 나 잡아봐라!" 하면서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아로미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거린다. "코코몽, 기다려. 점심 먹고 공원에 가서 놀자."
감자팡은 세균킹에게 돌아가 보고한다. 세균킹은 싱싱 나라로 출동하고, 코코몽과 친구들이 막아선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기억을 많이 되찾은 코코몽은 이전보다 더 용감해지고 힘이 세졌다.
세균킹은 코코몽과 친구들의 힘을 합친 공격에 결국 지고 만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세균킹은 감자팡이 보이지 않자 "감자팡!!!" 목놓아 부른다.
감자팡은 코코몽을 보며 자신도 싱싱 나라에서 살고 싶어져서 몰래 남게 되었다. 세균킹은 이제 감자팡을 되찾아올 작전을 짜느라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