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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뒤로 걷는 사랑

곧 11살 생일을 맞는 너와 함께하는 방법

by 해산

적당히 서늘한 날,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하루였다. 평일 하루 시간을 비워 온 가족이 놀이 공원에 놀러 갔다. 10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멋스럽게 교복을 빼입은 청춘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요즘 20대 사이에서 놀이 공원 교복 패션이 유행인가보다. 평일이어도 몹시 붐볐다. 설렘과 기다림이 공존하는 장소.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지만 난 놀이 기구 몇 개를 타고나니 체력이 바닥났다.

마지막으로 조를 나눠 훈(큰아이)과 아빠는 빠른 열차 기구를, 찬(작은아이)과 나는 범퍼카를 타기로 했다. 출발 직전, 아이에게 범퍼카 조작법을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범퍼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차에 온 마음을 뺏겼다. 탑승 전에는 별 기대감이 없었다. 살아오면서 범퍼카를 탔던 경험 모두를 종합해 볼 때, 엉기고 충돌하는 통제 불능의 답답한 느낌만 남아있었기에. 그런데 웬걸! 난 다른 차들 사이로 제법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며 공간을 최대로 활용해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장롱 면허를 살려보고자 연수도 다시 받고 노력했건만 남편은 차를 타면 내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았다. 나도 좋은 운전자가 될 수 있었는데…. 가능성을 묻어둔 아쉬움이 환희로 바뀌었다. ‘이 구역 최고 운전자는 나야! 범퍼카가 이렇게 재밌는 놀이 기구였나?’

실력자라도 된 양 신나서 달리는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찬의 범퍼카는 바닥 외곽,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장소의 턱에 닿아 있었다. ‘아, 차 뒤로 빼야 하는데.’ 핸들을 끝까지 돌린 상태에서 페달을 밟으면 후진한다는 설명까지 아이에게 이해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갑자기 핸들을 꺾어 아이에게로 향했다. 페달을 밟은 채로. 쿵! 타격감이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실제 도로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고 도로변으로 질주한 셈이었다. 범퍼카는 브레이크가 없으니 발을 뗐어야 했다.

한창 속도감을 즐기다가도 문득 아이가 떠올라 확인했던 나. 가장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차를 어찌할 바 모르는 아이를 보자마자 마치 반사행동처럼 돌진했던 나. 얼마 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찬이 죽은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갔는데, 막상 죽음을 확인하려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고동치며 잠을 깼던 기억. 아이를 떠나 나의 관심사에 더 집중하고 싶지만, 막상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조금이라도 불안 요인이 생기면 모든 걸 뒤로하고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반영한 꿈이 아니었을까. 연골판 손상으로 극도로 조심해야 할 무릎 부상마저 잊고 달려갈 상황은 아니었는데.

턱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아이에게 필요한 건 뭐였을까. 안전의 확보만 있으면 되지 않았을까? 급히 옆으로 가서 요령을 설명한들, 아이가 금방 알아듣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가 가도, 가지 않았어도 아이는 어찌어찌 조작해 보다가 우연히 방향을 돌려 빠져나왔거나 그대로 시간이 흘러 놀이가 끝날 터였다. 나의 축적된 범퍼카 경험들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범퍼카의 추억 하나를 쌓도록 놔둬도 괜찮았을 텐데.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 정도쯤은, 주변의 많은 눈이 나 대신 지켜봐 줬을 거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여러 수술을 겪으며 자라는 동안 찬은 엄마를 많이 의지했고, 지금도 그렇다. 난청과 같은 신체적인 불편함 뿐 아니라 발달적으로도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서 늘 더 많이 채워주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채워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는 내가 채우기보다 다른 이가 채울 수 있도록 몇 걸음 더 떨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눈과 손과 발이 어느 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으면 좋을지 생각한다. 사회가 채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는 엄마와 조금씩 멀어지며 혼자 해나갈 몫이 커질 것이다. 최소한의 안전 확보와 꾸준한 성장을 위한 지원, 두 가지 목표를 품고 지금까지 아이와 해온 노력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내려한다.

미처 보호대를 착용하지 못했던 한쪽 무릎에 타박상을 입었다. 다음에 범퍼카를 타러 가면 오직 놀이의 순간에만 집중하겠다. 무릎 보호대는 꼭 양쪽 모두 착용하고, 나만 아는 운전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싶다. 끝없이 다가가는 불안보다는, 한 걸음씩 멀어지는 사랑을 아이에게 주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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