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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카제 Jul 27. 2022

실감한다는 것

때론 실감하지 않아도 좋다

큰 일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남들의 위로에 이렇게 말한다.


"실감 나지 않아!"


정말 실감 나지 않는 것과 실감하지 않으려 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우린 진짜 '실감'을 잃어버린다.


감당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외면과 회피라는 심리적 기제를 사용한다. 우리에게 회피는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라 생각되지만, 난 그마저도 내 안에서 자신이 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 여겨진다.


얼마 전 큰 일을 겪으며, 그 상황 속에 놓인 내가 실감 나지 않았다. 경황없는 나에겐 실감보다 수습을 위한 노력이 먼저였다.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질병과 수술, 예후에 대한 공부를 하기 바빴다. 누군가는 K장녀라며 추켜세웠지만, 어딘가에 가둔지도 모를 슬픔과 황망함을 애써 모른 척하며 해야 할 일만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지인에게 나의 잃어버린 실감에 대해 말했었다.


"괜찮아. 실감하지 마! 왜 실감해야 해?

실감 안 해도 돼!"


갑자기 너무 위로가 되었다.

그래. 실감하지 말자.

그 병을 곱씹으며 어떻게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놓을지, 어떠한 절망과 슬픔을 가져올지 매 순간 실감하며 슬퍼하지 말자. 그냥 부지런히 닥친 숙제들을 하며 긍정의 하루를 살자.


지금 내 안의 슬픔은 거의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가정의 절망들이다. 그런 실감보다는 하루를 내가 해야 할 것들로 채우며 무던히 마무리하자. 실감해야 할 일들이 실감하기 전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난 지금 실감보다 막연한 희망과 확실한 축복이 필요하다. 지금의 어려움이 끝났을 때 사랑의 힘, 신앙의 능력, 긍정의 가치 등을 실감하길 바란다.


그게 내가 지금의 실감을 유보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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