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으로 늦은 밤, 약간의 취기와 피곤함이 짙었지만 날 기다린 아들과의 수다는 지나칠 수가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학원 이야기, 수학 수업시간 발표 에피소드, 담임선생님의 험담까지 소중한 아들의 일상을 공유했다.
얘기를 듣다가 더운 날씨 탓인지 답답했던 목걸이를 풀어 침대바닥에 놓았다. 그리고는 공연히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가는 목걸이 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꼬아놓다가, 반대방향을 찾아 같은 방식으로 풀어놓는 식이다. 귀로는 아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손가락은 바쁘게 새로운 놀이에 빠져들었다.
아들의 늦은 수다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목걸이에 매듭이 생겨버렸다.묶은 것도 아니고 계속 풀어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이리저리 목걸이줄을 돌려 보았지만 오히려 매듭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순간 당황했다.
묶지도 않은 매듭이 생긴 것이다.
그 순간 매듭이 왜 생겼는지 원인과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장난을 왜 시작했을까 하는 자책과 대상 없는 원망, 급기야 목걸이를 아예 못쓰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 가득했다.
아들과의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안방으로 돌아와 가는 핀셋까지 동원하며매듭을 풀기 위한필사적 노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줄 특성상 어느 줄이 어느 줄 위에 있는지가 전혀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니 매듭은 풀리기는커녕 더 단단해지는 듯했다.
'틈을 만들자.'
바늘을 찾아 매듭의 정중앙을 공략해 작은 틈새라도 만들려 애썼다. 노안으로 보기 힘든 눈을 부릅뜨며 애쓴 결과 어느새 틈을 찾았고, 바늘로 그 틈새를 벌리니 그 엉킴은 한순간에 실체를 드러내며 손쉽게 풀어져 버렸다.
순간 당황했다. 새벽 우연한 실수로 시작된 어이없는 사투는 1시간 만에 맥 빠지게 끝나버렸다.치열한 전투의 한가운데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평화협정의소식이 들려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목걸이 대첩은 새벽 3시가 넘어 끝이 났다.
간혹 관계에도 이런 매듭이 생길 때가 있다. 몇 번의 버석거림이 있긴 했지만, 크게 마음에 걸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분위기만 좋았다면 그저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이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일을 계기로 단단한 매듭이 되어 돌아오는 일.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아니었기에, 그 결과에 당황하고 이유를 설명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의도가 없었지만 결과는 엄연히 존재하기에, 그 엉킴을 풀어야 하나 얇은 감정선들의 뒤엉킴은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힘들다.
묵직한 공기, 서로의 닫힌 입술, 헝클어진 머릿속, 답답한 마음, 이를 깨기 위해 작은 틈을 찾아보지만 이내 삼켜버리고만다.
들여다보기 힘든 얇은 감정선들은 대부분 치사하고 소심하며, 쩨쩨한 것들이 많다. 작은 서운함, 살짝의 질투, 잠깐의 소외감,조금의 열등감과 자격지심 등 드러내고 자신 있게 읽어내기엔 조금 부끄러운 것들이다. 그사이 상대는 이를 읽어내지 못해 당황하고 자기식대로의 매듭을 더 만들어낸다. 의도치 않은 장난이 단단한 매듭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 우린 어떡해야 할까.
매듭은 덮어두고, 웃으며 상대에게 미안하다며 먼저 풀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핑계로 그때 기분이 안 좋았다고 둘러댈 수도 있다. 원래부터 사소한 거였고 굳이 확인할 필요 없는 감정까지 끄집어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 그렇게 해결할 수도 있다.
그 반대로 최대한 그 선을 들여다보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고 찬찬히 보며, 나의 이런 부분이 무엇을 만났을 때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명확하게 정리가 되면 상대와 공유한다. 근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뭉친 감정 실타래를 들여다보며, 나만의 화학반응식까지 찾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아니면, 지금 제일 확실한 감정인 막연함으로 틈을 만드는 거다. 일단 의도는 없을지언정 뭉쳐버린 나의 감정에 당황했을 상대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담백하게 현재의 상태를 공유하는 것이다. 감정을 나누고, 상대가 느낀 마음도 공유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솔직함을 꺼내놓다 보면 이유 한 자락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못 찾아도 내 기분을 꺼내놨으니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근데 이 모든 가정과는 별개로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 틈을 만들면 된다.바늘을 비좁은 틈에 넣고 슬슬슬~ 공간을 만들고, 이때다 싶으면 그 공간을 넓혀주면 된다.
크든 작든 관계의 엉킴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진 말자. 새벽 3시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난 귀한 목걸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 내 목에 있는 목걸이는 간밤에 사투가 만들어낸 값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