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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Sep 26. 2022

김밥

점심을 먹었는데 딸에게서 김밥을 만들었다며 가져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먹은 게 대수랴. 딸이 만든 김밥은 어떻게 생겼을지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아이들 셋을 키우며 소풍이다 현장학습이다해서 김밥을 자주 쌌다. 김밥 속은 미리 전 날에 준비하고 당일 새벽에 일어나 밥솥을 누른다. 앞치마를 두르는 마음이 여느 때와 같을 수 없다. 비장함까지는 아니어도 오늘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긴장감이 흐른다. 설레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풍선을 달아주고 싶은 모성도 만만치 않다.



보통 20~30개 김밥을 말았다. 아이들 도시락은 친구들도 생각해 넉넉하게 담고, 선생님 몫도 따로  준비한다. 그 다음 10층에 살고 있는 큰언니네로 한 접시 보내고도 충분히 남는 분량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침만 삼키며 기다린 가족들에게 짜투리만 줄 순 없다.


아이들은 우리집 김밥이 제일 맛있고 예뻤다고 기억한다. 특히 큰 딸은 엄마의 김밥을 자랑스러워 했다. 지금도 도시락을 열었을 때친구들 반응과 우쭐함을 종종 이야기한다. 밥양은 적고 속재료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다양한 재료에 불고기를 넣으면 맛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계란 시금치 당근 맛살 어묵 깻잎 단무지...


김밥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줄에 천원에서 천 오백원이면 1박2일의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어서 많은 주부들이 소풍 날이면 김밥집 앞에 줄을 섰다. 그래도 나는 우직하게 집에서 김밥을 말았다.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이 김밥에도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 셋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기술을 소유한 자의 손은 식재료로 가득한 식탁을 누비며 요술을 부렸다. 재료들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김밥 피라밋이 세워져 있었다.  뿌듯함이란.


딸이 가져온 김밥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유리그릇 안에 딸의 수고가 나란히 보인다. '자식이 만들어준 김밥을 먹는 날이 오는구나.' 종류대로 하나씩 맛을 보라고 한다. 참치김밥, 삼겹살김밥, 맛살볶음김밥... 회전초밥을 먹듯 하나씩 맛보고 나니 후식으로 김밥 대여섯개를 먹은 셈이 되었다.


배도 마음도 풍선처럼 불러온다. 맛있다는 감탄사를 스무번쯤은 했다.

김밥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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