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분기별 접수, 선착순이라 하여 걱정이 많았던 유치원 방과 후 수업 신청에 다행히 성공하여 월수금에는 오후 5시 넘어서, 화목에는 3시 반에 셔틀버스에서 내린다. 늦은 하원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려나 하는 우려도 잠시, 6월 복직인 나로서는 그전까지 최대한 스케줄을 픽스하여 아이를 적응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화목에 발레, 미술 정도를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학기 초 적응 기간을 조금 가져 보면서 진입 타이밍을 잡아보려 한다. 워낙 체력이 좋아 기존 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와도 끄떡없던 아이지만, 수업 내용도 조금 어려워지고 숙제도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니 지켜보아야 한다.
기존 놀이학교가 5세 반까지밖에 없었기 때문에 졸업 후 어디로 이동해야 하나 불안감이 늘 있었는데, 이제 잘 적응만 하면 6,7세까지 2년간은 괜찮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을 포함하는 의미다. 워킹맘이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안정적인 스케줄 세팅이다. 일을 '잘하기' 또는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랄까.
아이가 하나일 때는 그래도 입주 이모님과 함께 한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다. 우리 집의 대원칙은 1) 나와 남편 중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보기, 2) 가능하면 이틀 연속 야근이나 회식으로 아이를 못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였다. 하지만 둘 다 일이 바쁜 시즌이 겹친다거나 할 땐 부득이하게 이모님과 함께 아이가 잠드는 날들도 있었다.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마음은 엄마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와 남편 둘 다 퇴근이 불규칙적인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렇게라도 일을 유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구조였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서는 입주 이모님에게만 의지하기가 어렵다. 내가 복직할 즈음이면 둘째가 돌이 채 되기 전이라 걷지도 못하는 아기 하나만 보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쉴 새 없이 하며 상대방이 반응해 주기를 바라는 6세 아이를 동시에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 둘을 함께 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정신이 없는 시간일 텐데 이 시간이 길면 그동안 아이 중 누구 하나가 소외될 것이 걱정스럽고 이모님도 쉬이 지치실 테니, 최대한 이모님도 아이도 편안할 수 있게 시간을 세팅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나의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이고 회사가 가깝기 때문에, 아침에 내가 부지런을 좀 떨면(=참을 인 자 스무 번쯤과 함께 정신없음을 감수하면) 직접 등원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원은 유치원 방과 후 수업과 픽업되는 학원 연결을 통해 5시 정도 셔틀버스에서 하차하도록 세팅한다면, 그쯤 이모님이 픽업하셔서 저녁 먹여주시는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예외 없이 무조건 일찍 퇴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지는, 복직을 해봐야 알 것 같다. 아침 이른 시간 회의가 있는 날에는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을 하고, 정말 부득이하게 둘 다 퇴근이 늦을 것 같은 날에는 부모님께 부탁을 드려야겠지. 가까이 사시기 때문에 그 정도는 도와주실 수 있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우리 부부 선에서 해결하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이려나.
사실 입주 이모님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운이 좋은 삶인지를 알기에, 내게 주어진 이 삶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매년 치솟는 입주 이모님 급여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럭키한 것은 맞지만, 예측 불가능한 퇴근 시간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서 부모님의 전적인 도움 없이 일을 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더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분들도 많으니 징징대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운과 비용과 노력을 몰빵 하며 애를 써야 애 둘을 낳고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것이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하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워킹맘 오복 중 제일은 시터 이모님 복이라고들 하니 이 시스템도 좋은 분을 만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고, 이마저도 하원 시간이 늦은 유치원생 시절에나 가능한 구조이고 초등학생들은 12시면 하교를 한다던데, 그땐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가야 할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렇게까지 굳이 일을 해야 하는 건가, 어차피 초등학교 들어간 후 스케줄 감당이 안 되어 그만두게 될 거라면 그냥 지금 그만두고 아이 한창 클 때 더 챙겨주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고민에 또다시 다다른다. 도돌이표 같은 이 주제는 또다시 몇 바닥을 채워야 하는 내용이기에 다음으로 미뤄두고. '너의 재능은 집안일이 아니라 바깥일에 있어! 아까운 인재여 나가라 일터로!'라는 남편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에 일단은 복직을 할 것 같으므로 일과 삶이 양립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강구해 본다.
물론 내가 현재 육아휴직 중으로 시간이 더 많기에 이 모든 고민과 실행을 담당하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이 고군분투를 늘 나 홀로 하는 듯한 이 상황이 달갑지가 않다. 나는 내 몸 망가져가면서 아기를 낳고,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스트레스도 또 나 혼자만의 몫인 것만 같아 때때로 억울해진다. 우리 사랑의 결실에 이해의 득실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최소한 이것이 나라는 인간의 큰 희생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한 인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로의 노고를 인정해 주고 그 마음을 안아주고 대책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일 텐데, 남녀 갈등 또한 극에 달해 서로를 적대시하고, 심지어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정치권은 이를 이용하는 이 세태에는 답이 없다. 이대로 가면 출산율 0.78에 대한 보완 방법은 결국 다문화 사회뿐일 텐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겪게 될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내가 나고 자란 이곳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 또한 이곳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이 또한 한참을 써야 하는 주제이므로 이만 말을 줄여야겠다.
한국의 미래까지는 너무 먼 이야기이고, 일단은 그저 우리 첫째가 새로운 기관에 잘 적응해 주기를 바라본다. 널 믿고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