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발리
발리는 인도양과 정글, 라이스필드 등 다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갖춘 데다 날씨도 쾌적하고 무엇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가 가볼 만한 장소들이 많아서 우리 가족이 참 좋아하는 여행지이다. 동남아시아라고는 해도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이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에 비해 한참 남쪽, 적도보다도 아래에 위치해있기에 직항 7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아시아치고는 상당히 멀고 이국적인 지역이다. 호주에서 비행기로 4시간 이내라 베트남에 한국 여행자가 많듯이 발리에는 호주 여행자가 절대적으로 많고, 유럽인들도 많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이국적인 자연과 영적인 에너지가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로서 굳건한 이미지를 가진 덕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해,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5년 만에 발리를 다시 찾았다. 20여일 간의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지난 여행의 추억이 아직 생생하면서도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물론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봉쇄조치, 그 뒤의 폭발적인 여행객 증가가 그 사이에 일어났기에 체감되는 변화가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두 번의 여행에서 모두 머물렀던 우붓은 바다와는 떨어져있지만 산과 정글이 있고, 시내에서든 산지에서든 주변을 둘러보면 라이스필드가 단정하게 놓여있어 풍경에 상당히아이덴티티가 있다. 지형과 풍경을 활용한 발리스윙(높은 산에 올라가 반대편 산자락에 펼쳐진 푸른 정글을 배경으로 거대한 그네를 타면서 인생사진을 찍는 것)이 관광상품으로 나와있기도 하다.
우붓 중심지의 아무 카페나 대충 들어가도 카페 입구의 반대편으로는 라이스필드가 펼쳐져 있고, 원숭이가 전선줄을 타고 지붕을 넘나드는 게 보이고, 인도네시아식 음식과 서양식 음식을 모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에서는 쾌적하며, 현지인보다 서양인이 많다. 길가에 향과 공물을 펼쳐놓는 일상풍경이 지극히 에스닉한 한편으로 관광객의 구성은 글로벌하다.
5년전 우붓에 왔을 때 세련되고 맛있는 음식점에도 다니고 오래된 아름다운 사원들을 둘러보고 우거진 나무에 둘러쌓인수영장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날은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우붓 왕족의 결혼식을 구경했고, 자다가 지진을 느껴 남편과 몇 초간 숨죽여 눈만 깜빡거리기도 했었다. 그런 경험과 함께 여행이 끝난 뒤에도 자주 생각난 것 중 하나가 우붓에서 봤던 구걸하는 가족들이었다.
그때 우리가 머물렀던 우붓 중심지의 호텔 입구 근처에 늘상 앉아있는 거지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무심히 앉아있다가 한 번씩 손을 내밀었는데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할머니-엄마-아이로 구성된 단촐한 3인 가족인데 아이가 우리 아들과 또래라서 호텔을 드나들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 엄마는 내가 보기엔 아직 십대 같았다. 정말 많이 잡아도 스무살이나 됐을까. 저 집의 할아버지와 아빠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래도 할머니가 엄마를 낳던 때의 상황과 운명이 엄마가 아들을 낳을 때 반복된 것일까? 저 아이가 좀더 컸을 때도 할머니,엄마와 함께 길에서 구걸을 하며 앉아 있을 것인가?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인도네시아는 초등에서 고등까지 12년이 의무교육이지만 무상교육은 아니라고 한다. 중등교육 취학률은 약 90%로 낮지는 않았다.) 구걸을 통한 수입이 관광 비수기를 견뎌낼 수 있을만큼이 될까? 다른 돈벌이 수단은 없는 것인가? 외국인 관광객의 적선에 의지하는 삶의 방식은 지속 가능할까? 따뜻한 나라라서 이게 가능한거겠지? 혹시 다른 가족들이 있고 다른 밥벌이 수단도 있는데 구걸도 병행하는 걸까?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다 등등.
그런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가족이 여럿 있어서 상당히 놀랐다. 호텔 앞에서 지내는 그 가족을 볼 때마다 마음에 큰 짐을 느끼며 호텔 체크아웃하는 날 돈과 아이 물품을 주려 했던 나와 남편이 '이거 혹시 일반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인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히 드물다고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로 세계적인 봉쇄조치가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외국인 관광이 주된 수입원인 수많은 개도국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그들이 종종 생각났다. 그 삶은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 이번에 여행가서 다시 그 길들을 돌아다녀 보니 그런 거지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때 그 가족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대체 그 많던 거지가 어디로 간 것일까.
코로나 봉쇄 시절에 구걸하는 이들이나 노숙자에 대해서 어떤 정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직접적인 제한조치가 없더라도 관광객이 끊긴 상황에서는 구걸의 의미가 없었을 테니 자연스레 다른 길을 모색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무엇이 가능할까. 그 단절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우붓에 관광객이 넘쳐나던데, 좀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거리에 거지들이 나올까.
예전처럼 무작정 앉아있는 거지는 못 봤지만, 관광지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들이밀거나차가 신호대기하는 중에 갑자기 다가와 수준낮은 연주를 느닷없이 펼쳐보이면서 적선을 구하는 사람들은 간혹 있었다. 아무래도 노동력이나 자본을 조금이라도 투입하는 것이니 상황이 조금 나아진 걸까 싶기도 하고, 구걸하는 개인의 입장에선 삶이 더 녹록치 않아진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동남아 휴양지의 날씨, 물리적 접근성, 자연 등등을 다 좋아하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장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런 여행에서는 지속적으로 가난을 목도하게 되고, 그 점에 마음이 쓰이지만 한편으로 빈곤의 어떤 선을 지난 이후로는 소득수준의 차이가 꼭 삶의 질로 일대일 대응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부분을 부풀려서 생각지 않으려고도 한다. 그래도, 서너살짜리 어린 아이가 십대 엄마와 함께 길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