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체적 불편, 고통, 이 부정적인 변화가 평생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우울감 등이 임신 기간 내내 깔려있었지만 '정말 이건 다시 못 겪겠다' 라는 마음은 다른 데서 왔다.
임신중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시기별로 다양한 검사를 받는데, 나는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135:1)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러한 피검사 결과를 가진 애를 135명 낳는다면 그중 1명은 다운증후군이라는 의미였다. 270보다 숫자가 작으면 고위험군이라고 했고, 원한다면 양수검사를 통해 염색체를 확인해서 정확한 다운증후군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이고, 이렇게 숫자 위주로 설명하니 무채색의 서술같지만 그 결과를 들었을 때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양수검사는 태아를 감싸고 있는 양수를 채취해서 하는 검사다 보니 확률은 낮더라도 치명적인 부작용(감염, 유산 등)이 있어 양수검사를 할지 말지 선택해야 했다. 남편은 다운증후군이든 아니든 우리는 애를 낳을 거고 사랑할 건데 왜 리스크가 있는 검사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바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에게는 의미없는 말이다. 다행히 담당 의사선생님이 굉장히 논리적으로 양수검사를 권유하셨다.
"낙태를 할 것도 아닌데 양수검사까지 해서 다운증후군을 미리 판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다운증후군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아주 높은데, 이 경우 산모님의 마음이 편해져요. 산모가 불안하면 남은 임신기간 내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게 아주 큰 장점이에요. 그리고 혹시 다운증후군일 경우, 선천적인 심장 질환을 동반할 경우가 많아서 출산 후 바로 신생아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어요. 어느 쪽이든 저는 검사받는 걸 추천드려요."
나 역시 임신기간 내내 이런 멘탈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양수검사를 받았다. 2차 기형아 검사를 들을 때도 일주일의 기다림이 있었고, 양수검사를 결정하기까지 또 며칠, 양수검사를 하고 나서 또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기다림의 시기 중 총선이 있었는데 투표소가 하필 특수학교라서 먹먹한 기분으로, 시설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투표를 치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병원에서 검사결과 전화가 왔다. 다운증후군이 아닌 것으로 확정결과가 나왔는데, 라는 기쁜 소식으로 시작되었으나 산이 하나 더 있었다. 태아가 남자아이라고 하면서 원래 양수검사를 하면 당연히 성별도 나오지만 이 부분은 비밀로 하게 돼있는데, 지금은 상황상 알려드리게 됐다고 했다. 성염색체 중 Y 염색체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되서 추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네?
이 돌연변이가 아빠의 Y염색체에 이미 있던 것, 즉 유전된 돌연변이라면 괜찮지만 아이에게서 처음 발생한 돌연변이라면 생식능력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남편의 염색체 검사가 필요했다. 또다시 열흘의 기다림.
그 시간동안 아이에게 생식기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상상해보았다. 쉽게 말해 고자라는 건가? 싶었는데, 안타깝긴 하지만 방금 전까지 다운증후군을 걱정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생산을 못하는 것이지 본인이 아프거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생명과 건강에 초점을 맞추는 건 부모인 나의 입장이고, 커서 독립된 개인이 된 이 아이에게는 큰 좌절이 될 수 있겠지? 이런 건 아이에게 언제 알려줘야할까? 얘가 연애를 할때마다 상대방에게 이 점을 미리 말해야겠지? 이런 걸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다는 게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일까?
다행히 검사결과 남편에게도 동일한 변이가 있기에 정상 염색체와 기능적 차이기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온갖 검사가 발달해서 없어도 될 번뇌를 지독하게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안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을.
이 일련의 과정- 2차 기형아 검사 결과에서 남편의 염색체 검사 결과까지-이 한달반에 걸쳐 일어났고, 나는 이제 임신이라는 게 숟가락에 날달걀을 얹고 달리는 마라톤처럼 느껴졌다. 몸도 힘든데 그보다는 이 계란이 언제 떨어져 부서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불안이 끝나는 날이 왔다.
39주를 꽉 채운 안정적인 출산시기, 초산치고 길지 않은 6시간의 진통, 물론 디테일에서는 힘들었지만 대체로 양호한 출산과정을 거쳐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첫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양수 속에서 태반을 통해 호흡하던 태아에게는 출산 후의 첫울음이 곧 호흡이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의료인이 아니고 드디어 애가 나왔다는 사실에 이미 모든 기력과 집중력을 잃었기에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못했다. 그저 아기가 울지 않았고, 원래는 산모의 배 위에 아이를 올려준다고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급히 뭐라 외치더니 아기를 안고 뛰어나가고, 그때 아이의 발바닥이 푸르스름해보였다... 정도만 기억난다. 다행히 아이는 산소집중치료를 받고 괜찮아져서 다음날에는 만나볼 수 있었다. 그 회복의 메세지가 전해지기 전까지 시시각각 아이의 상태가 어찌 되어가고 있나 궁금하고 불안하기도 했으나 혹시라도 부정탈까 싶어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이제 다 끝났구나 생각하며 퇴원하려던 날, 병원에서 아기가 황달수치가 높아 치료를 받아야 하니 산모 먼저 퇴원하라고 했다. 아 정말... 내 소중한 달걀은 왜 아직도 이렇게나 흔들흔들 떨어질 것만 같단 말인가.
그 외에도 아이에게 신생아 딤플(엉덩이 위쪽에 보조개처럼 파인 자국으로 그냥 흔적만 있을 수도 있고 신경관 결손의 표시일 수도 있다)이 있었고, 팔에는 주먹만한 홍반(혈관 말단의 기형으로 나타나는 새빨간 반점으로 혈관종, 화염상모반이라고도 한다)이 있었다. 딤플이 기능적 이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걷는 데에 문제가 생길 텐데 신생아 때에는 당연히 이게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홍반은 자라면서 없어지지 않으면 수십번 레이저치료를 해야한다고 했다.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대학병원을 여러 차례 다녔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 괜찮아졌다. 딤플은 신경관 결손이 아니었고, 홍반은 이제 거의 없어져서 나만 눈치챌 정도다.
다운증후군 고위험, 염색체 돌연변이, 신생아 호흡장애, 황달, 딤플, 홍반.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일이 해프닝처럼 지나갔고, 각각의 이벤트가 의학적으로는 별일 아닐 것이다. 같은 상황에 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개 별 문제 없다는 결론을 맞이한다. 하지만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이 일이 잘못 풀렸을 때의 결과가 너무나 치명적이기에, 그리고 이벤트를 바꿔가며 자꾸만 닥쳐왔기에 마음을 편히 먹기가 어려웠다.
세상에는 길을 가다 번개를 맞거나, 가게에 앉아있는데 차가 돌진해 들어와서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있다. 세상엔 아프게 태어나거나 살아가며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일상을 살아내기가 어렵다.
나는 아이가 태아에서 신생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님 아들 이거 잘못 풀리면 장애/사망/...' 플래그 앞에 서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 내 아이가 아프지 않을 거라는 무의식적 자기방어를 할 수가 없었다. 강해서든 무심해서든 '아이가 아플 수도 있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시 아이를 가진다는 게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으로 느껴졌다. 물론 같은 상황에 있었던 남편은 아무 걱정없이 둘째를 원했던 걸 보면 무슨 이벤트를 겪든 다 사람의 마인드 문제긴 하다.
돌이켜보면 아들을 가졌을 땐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그저 막연히 원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는 그런 마음으로 가지고 낳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는 태어날 아이가 크게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이겨내기 어려웠고, 일과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괴로움을 이겨내기도 어려웠는데 그런 점을 담대하게 무시하고 아이를 여럿 낳아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한 명의 아이만 낳아 부모 자식이 늘상 어울려 일상을 함께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부부끼리만 지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마음껏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