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리에 갔던 십여년 전, 뜨갈랄랑의 계단식논을 보고 경이를 느꼈다.
그것은 대자연도 아니고, 인간이 고도의 기술로 정제해낸 예술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산지에 촘촘한 계단식으로 형성된 논은 일부러 만든 조각처럼 인위적인 선을 그리면서도 초록 자연에 완전히 안겨있었다. 산비탈을 따라 자리한 논을 떠올리면 연두가 섞이지 않은 진한 초록이 생각난다.
최근 발리에 다시 갔을 때 우붓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보니 우붓 이곳저곳의 수많은 카페와 식당들이 라이스필드뷰를 갖추고 있었다. 앞문은 복작복작한 길거리에 면해 있는데 가게에 들어가면 뒤편으로 논을 바라보는 테이블들이 있고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라떼나 모히또를 마실 수 있다. 말하자면 '라이스필드뷰'를 선보이는 많은 가게와 호텔들이 있었다.
뜨갈랄랑의 계단식논과 우붓 시내의 곳곳에 자리잡은 작은 논들 모두 농업의 현장인데 풍경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볼 때마다 신기하다. 계단식 논을 마주했을 때 우리나라의 고랭지 농업, 화전 등이 떠오르면서 그 옛날에 산을 한단씩 평탄화 시켜가며 논을 만들기까지 어떤 절실함과 노력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식 논은 보기 좋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산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논의 모양일 테니까. 이곳의 기후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벼농사를 짓기 적합하고 토양도 풍요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철 더운 날씨에 산을 깎아 논을 만들고 그 계단식 논들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는 고통이 덜할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논들이 이렇게 깔끔하고 보기좋은 것은 지금도 누가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맥락에서 계단식 논을 가리켜 아름답다 말하며 그를 배경으로 차를 마시고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대사회의 감상인지, 백년 전에 길을 지나가다 이 풍경을 발견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도 논이 많고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 보면 정말 숱하게 논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내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우붓의 지극히 풍요로운 자연이 그 안에 비집고 들어간 고통스런 삶의 현장마저 풍경으로 승화시켜놓았나 보다. 그리고 내 나라의 논밭이 좀더 짠내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우붓에서 시선이 닿는 어디에나 자리한 논을 보며 그 뒤에 숨은 노동과 한숨을 헤아려보았지만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 적도에서 멀지 않은 레인포레스트에 신이 만든 정원처럼 자리한 계단식 논이 어우러진 특별한 모습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붓의 오버투어리즘이 극심하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한 데다가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장기적으로 건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소득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우붓의 논이 온전히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소득과 그 아름다운 풍경이 관광자원으로 쓰이며 벌어들이는 소득 중 어느 쪽이 많은지 조사된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
대자연은 막연한 압도감을 주고, 인간이 기여한 풍경은 그 곳을 스쳐간 역사와 사람을 생각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