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제가 진행했던 패션 저널리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패션 비평(fashion criticism)에 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먼저 비평이란 비평하려는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비평’은 단점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분석하고 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단점을 꼬집는 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단점을 언급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가치 평가를 내릴 때 가능한 한 적절한 근거를 갖추어야 하는데요. ‘기대에 못 미친다’, 또는 ‘지루하다’ 등 부정적인 평가는 가능하지만 이런 평가에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근거를 채워 줄 성실한 부연 설명이 뒤따라야 합니다. 책임감 있는 비판적인 태도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공을 들인 작가의 노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비평의 대상을 찾았다면 자기만의 기준과 시각으로 대상을 분석한 다음, 그것의 고유한 가치를 사회 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평가하고 짚어내는 걸 비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비평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예술에서 비평은 문학/디자인/영화/예술 작품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패션 비평
패션지는 유독 비판을 찾아보기 힘든 매체입니다. 그 이유는 광고주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인데요. 책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의 저자 탠시 E. 호스킨스가 말하길, 패션 보도는 광고 산업을 둘러싼 잡지와 브랜드와의 공생 관계로 인해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패션 잡지의 절반 이상이 광고로 채워지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잡지 판매 가격은 제작 비용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책정됩니다. 광고가 그 차액을 메꾸고 이윤을 제공하게 되죠. 잡지에 실리는 광고는 독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실린다기보다 제품을 홍보하고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게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광고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한 주제를 잡지에 싣는 걸 꺼리는 경우도 많고요.
미디어는 그 자체로 '홍보'라는 권력을 가진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 탠시 E. 호스킨스
역사가 깊은 패션 잡지 보그(Vogue)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권위가 있죠. 사람들은 보그가 홍보하는 걸 믿고 구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패션지들은 독자의 신뢰할만한 친구처럼 충고를 하거나 가이드하는 역할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길 수 있는데요. 패션 에디터와 저널리스트가 문제를 제기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미디어가 멋대로 굴지 못하는 유일한 분야가 패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는 자기 돈으로 영화 표를 사서 보면 되고, 음식 평론가는 익명으로 식당을 방문하면 되지만, 패션 평론가는 단 한 번만 열리는 패션쇼에 초대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이름난 패션 평론가들은 패션지가 아닌 광고 의존도가 덜한 신문사 출신들이 많습니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패션 저널리스트 캐시 호린은 특정 패션 브랜드를 비판하는 리뷰를 썼다가 돌체 앤 가바나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수많은 쇼에 입장 금지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디언 소속 저널리스트인 해들리 프리맨은 모피 이브닝드레스로 가득한 장 폴 고티에의 패션쇼를 보고 디자이너가 야만적일 정도로 모피 사용을 좋아한다고 비난했다가 그의 쇼에 영구적으로 입장 금지를 당하게 됩니다. 수지 멘키스도 존 갈리아노 쇼를 혹독하게 비평했다가 존 갈리아노와 디올, 지방시, 디올 등 브랜드를 거느린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의 패션쇼에 입장 금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Aria Darcella가 작성한 'Fashion on the Internet: Is Criticism Irrelevant?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발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뉴요커 매거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 덕분에 패션 평론가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발망 팬들을 위해 패션을 만들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평론가들이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매우 불리할 거예요.
그런데 진실은 그들의 비평은 더 이상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패션 잡지에 실리는 패션쇼 리뷰가 브랜드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패션 미디어의 파워는 대단했어요. 그러나 매거진이 프린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글로 표현된 패션 비평이 가진 영향력은 감소하게 됩니다. 평론가들이 아무리 비난을 하고 떠들어대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한다면 그 옷은 여전히 팔린다는 거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브랜드들은 온라인 상에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그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어요. 소비자들은 이를 환영했고 브랜드의 열정적인 팬이 되었습니다. 우린 SNS에서 패션쇼를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에디터가 패션쇼 리뷰를 쓰는 것보다 먼저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패션쇼를 접할 수 있죠. 전문가가 코멘트하기 전에 소비자들은 이미 그 쇼를 평가하고 마음을 정한 상태라는 겁니다.
패션 비평은 사라지게 될까요?
이 질문의 대답은 'No'입니다. 패션 비평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까도 말했듯이 인터넷은 패션 산업 전반을 바꾸어 놓았는데 특히 미디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보의 흐름은 어느 때보다 빨라졌고 사람들은 특정 트렌드가 도달할 때까지 더 이상 몇 달씩 기다리지 않습니다. 패션 저널리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바탕으로 각종 온라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패션 저널리즘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매거진은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온라인 미디어, 대표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패션 블로그 또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패션 블로거들의 콘텐츠를 살펴보면 기사성 광고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문제점은 패션에 대한 전문적인 논평이 부족하고 어조가 단일하다는 것인데요. 오락성이 짙은 패션 블로그가 넘쳐나는 지금 건설적이면서 전문적인 패션 비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럼 패션 비평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야 할까요?
비평가들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보도하는 방식을 깊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패션쇼에 초대받은 에디터들은 옷을 직접 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사진과 영상으로만 쇼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조악한 플라스틱 시퀸 드레스가 런웨이의 밝은 조명과 사진의 평면적인 특성 때문에 고급 글래스 비즈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요. 컬렉션의 미학적인 면뿐만 아니라 테크티컬 한 부분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쇼를 직접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포지션을 활용하여 이미지로만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겠지요.
패션 에디터 Aria Darcella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판적이지 않을 거라면 평론가인 척하지 말라
건설적인 비평은 디자이너가 롱런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됩니다. '비판적이지 못한다는 건 패션 저널리즘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Darcella는 이야기합니다.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평가하고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기록하는 게 저널리즘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역할이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평론가가 작성한 리뷰나 기사는 광고일 뿐이겠죠.
또한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져볼 수도 있습니다. 이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규 교육을 받고 인턴부터 시작해서 커리어를 쌓는 길을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어요. 독자들에게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시도 또한 패션 비평이 진화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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