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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victus Oct 28. 2015

19살 가요제의 추억,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중요한 것

7dayz - 내가 그댈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이 SNS에서 날 태그했다는 알림이 왔다. 가수들이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짧은 제목과 그 친구가 남긴 단순한 댓글만으로도(웃음소리를 표현한 긴 자음의 나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난 '나비 효과'를 지나칠 정도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 정도가 옅어졌다고 해도, 일상의 결정 하나 하나를 내릴 때 그 효과들을 상상하게 된다는 건 여전히 내 삶의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상상들 중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극히 일부다.


2004년 XX고등학교의 축제 때 7dayz의 '내가 그댈'이란 노래를 그때 부르지 않았다면, 지금 이 방송이 나에게 이만큼 큰 여운을 남겼을까. 매년 있는 학교 축제를 앞두고, 나는 친구와 가요제 참가를 신청했다. 오락실 동전노래방을 밥먹듯이 함께 드나들던 친구와 나에게 나름의 도전이었다. 가요제 예선이 치러지던 날, 친구와 나는 Stevie Wonder의 'Lately'라는 팝송을 불렀다. 무난히 예선을 통과했으나, 전교생들이 볼 가요제 결선 무대에서 부르기에 이 곡이 적합한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대중적이지도 않은, 그것도 팝송을 불렀을 때 호응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였다. 그렇게 공들여 연습했던 곡을 결국 7dayz의 '내가 그댈'이라는 곡으로 바꾸어 결선에 나갔다. (이 곡 역시 팝송만 아닐 뿐 그 당시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니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할 때 더 아이러니하다)


연습 시간도 부족했고, 곡 자체도 우리에게 맞지 않았으니 결과는 뻔했다. 축제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거라며 자신있게 다른 학교의 친구들까지 불러모았으나, 친구들에게 당시 그 무대는 '나는 가수다'라기 보다는 '개그 콘서트'에 가깝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창피하기만 했던 학창시절의 에피소드가 11년이 지난 현재, 한 동창생이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나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태그함으로써 또 한번 나의 쪽팔림을 상기시...키는 건 아니고 모두를 웃게 만들어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추억의 작용이란 어쩌면 비슷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19살의 나에겐 학교 가요제에 참가하는 것만도 굉장히 어렵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축제 일주일 전 연습했던 곡을 바꾸고 당일에 무대에 올랐을 때는 더 그러했다. 하지만 그 결정 하나가 이후 내 인생 11년에 걸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날 기억하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고,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면 고등학생 나의 짧은 쪽팔림은 대수롭지 않았던게 아닐까. 


나이 서른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깨닫기도 하였지만, 인생 경험이 쌓이면서 난 이미 배웠던 것 같다. 사소한 걱정이나 주변 시선 때문에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 흔히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예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남자는 사람들이 많은 광장 혹은 버스 안에 있다. 그리고 여자는 장난스럽게 요구한다.


"나 사랑한다고 해줘!"


어렸을 때의 난 무척 당황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주변 사람들이 의식되는 마음이 충돌해서였다. 실제로 그 당시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내가 혼자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지도 몰랐고, 설사 '사랑해'라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한들 날 기억이나 할까. 지금의 난 망설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 주변에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내가 이 한마디를 전함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감정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걱정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고등학생 나의 창피했던 에피소드, 연인에게 전하는 사랑하다는 말,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나가야할 일들. 그 모든 일들이 달라보일지 모르지만, 결정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한결같아야 한다. '본질'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본질'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결정한다면 나는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다른 사소한 일들(하지만 그 순간에는 크게 느껴지기도 하는 걱정거리들)이 당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선택을 방해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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