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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victus Oct 28. 2015

아이들의 웃는 얼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환상적인 일일까. 여태껏 살면서 교육에 관련된 일이라든가, 어린이와 관련하여 기부하는 일 등에 큰 관심을 가진 일이 없었다. 타인을 생각하는 감성이 메말라서라거나 냉혈한이라서는 아닐거다. 적어도 '관심이 없었다'가 아니라 '큰 관심을 가진 일이 없었다'라고 애써 돌려 말한 것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부분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나의 일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 살아가는 다른 누구의 일이라도 난 그를 함부로 비난하진 못할것이다. 그만큼 관심사, 사회 문제들이 다양하며 개인의 삶 하나도 정상적으로 영위해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든 시대이다. 개인의 문제 속에서 우선순위를 찾아 해결하는 것도 벅찬데 하물며 집단, 그것도 인류의 우선순위는 누가 정하며 또 어떠한 합의로 해결해나갈 것인가.


지하철에서 환승을 하러 걷는 중에 한 가족이 꼬마 아이 하나만을 개찰구 반대편에 남겨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이는 자신의 교통카드를 잃어버린 듯 했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난 바닥에 떨어진 교통카드를 잠시나마 눈으로 함께 찾기 시작했고, 다행히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카드를 주워서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남자아이.


"고맙습니다~!"


동생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만 카드를 잃어버린 창피함 때문인지, 부모님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 때문에 위축이 되어서인지, 혹은 키가 커다란 무표정의 아저씨가 (스스로를 이젠 아저씨라고 칭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낀다는 것에 서글픔을 느낀다) 갑자기 자신의 카드를 돌려준다는 것이 데면데면해서인지 아이는 조금은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짧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대한 보람일 수도 있지만, 대상이 그 아이였다는 것도 한가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버스에서 생면부지의 남의 아기를 보아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혹은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 보상를 바라지 않는 기부 등이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 살만한 세상이 된다는 건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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