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놓기_02] 사랑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화석
열세 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궁금한 건 BTS나 ENHYPEN 오빠들만이 아니다.
“아빠. 아직도 엄마랑 뽀뽀도 하고 그래?”
‘풉. 드디어 올 게 온 건가’ 심장에 서늘한 것이 날아와 박힌다. 내심 자존심도 건드리면서 서글퍼지는 질문, ‘밥은 먹고 다니냐?’와 은근히 포개진다. '뽀뽀는 좀 하고 다니냐?'
“아니.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고!”
“엄마랑 손잡고 잤어.”
“(정색하며) 아빠!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딸아. 대체 궁금한 게 뭐니. 그 정도 알면, 넌 이미 모르는 게 없는 거 같은데. 분명히 유튜브로 뭔가 보고 덤비는 거 같은데. 나 좀 살려주면 안 되겠니? 질문은 쉬 사그라지지 않는다.
“엄마랑 어떻게 만났어?”
아이들은 언제쯤 내 부모의 연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까. 나는 우리 부모님이 서로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으며 살게 됐는지 언제 궁금한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마음 구석 어디엔가 붙박이별처럼 반짝이는 이야기 하나.
우리 아버지 왼쪽 눈꺼풀 가장자리에는 깊거나 길진 않지만 눈에 어렵지 않게 보이는 흉터가 하나 있다. 어렸을 때 그 흉터가 어쩌다 생겼는지 물어보면 아버지는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 자세하게 말씀을 안 하셨다. 내가 아버지 흉터의 비밀을 알 게 된 건 나에게도 짝사랑의 열병이 한번 지나가고 아마 누군가를 깊이 마음에 담아두는 법을 몸으로 배운 뒤였다.
아버지와 엄마는 같은 강화도에서 나고 자랐다. 한반도 전쟁 이후에도 북한과 초 인접 지역인 만큼 무장공비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려와 마을 사람들 목을 베어간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섬마을 사람들은 이런 지리적 환경 탓에 순박하고 순수했지만 극도로 보수적인 데다가 성격이 깔깔하고 무뚝뚝했다. 부모님이 마주하고 자라왔던 삶의 자리도 이런 모판을 떠나지 못했다.
엄마는 찬우물 냉정리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집 여덟 남매의 장녀였다. 외할아버지는 석수장이 일과 농사일을 함께 하셨다. 6.25 전쟁 상이용사 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는 성격이 불처럼 급했다. 당연히 엄마는 소학교만 다니고 열두 살부터 공장을 다녔고 공장을 가지 않을 때는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려있는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감성이 풍부하고 꽃이랑 나무와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엄마는 늘 배우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해가 짧아지는 겨울에는 몇 십리를 홀로 걸어 돌아오는 그 길이 무서웠던 엄마. 그리고 그 길에 우리 엄마 이름을 부르며 기다리고 계시던 외할머니. 엄마가 해준 ‘엄마’ 이야기는 내 가슴속에도 아픈 이야기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두 마을 아래 호박골 전가네 다섯 남매의 둘째였다. 친할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었지만 동네에서도 부지런한 걸로 치면 농사꾼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셨다. 아버지가 그런 할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길은 책을 읽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부터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나무를 해오고 부지런히 소에게 풀을 뜯기셨다.
아버지 중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직 한참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아버지는 물리적으로 부모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끊겼다. 그때부터 학교를 중퇴하고 손에 70원을 들고 도회지로 떠나 여기저기 전전하며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는 게 빡빡하고, 삶의 모판이 투박해도 사랑은 피어난다
그래도 참 사람 사는 일이 신기하다. 그렇게 삶의 자리가 겹쳐질 듯 겹쳐질 일 없이 살아가던 아버지와 엄마도 가슴 설레는 사랑을 했다. 아무리 사는 게 빡빡하고, 삶의 모판이 투박해도 사랑은 피어난다. 자전거를 타고 냉정리를 지나 호박골로 내려가던 아버지 눈에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아버지 얼굴이 너무 반반하게 생겨서 차갑게 대했다고 했다.
눈길 한번 안 주던 엄마와는 달리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얼굴 한번 볼까 기웃거리던 아버지는 도랑에 빠져 갓길에 난 찔레 가시에 그만 눈꺼풀이 찢어지고 말았다. “야……. 너희 엄마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고.” 아버지 눈에 난 흉터는 아버지와 엄마가 사랑한 흔적이며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부드러운 화석이다.
“아니, 그래서. 엄마랑 아빠 어떻게 만났냐고!”
“저기. 그래서 말인데. 너 할아버지랑 할머니 어떻게 만났는 줄 알아?”
딸은 조용해졌고, 나는 평안함을 되찾았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한 사랑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화석
그렇다. '너'와 '나'의 그것이 아주 오래된 일이든, 현재 진행형이든. 사랑받고 사랑한 뜨거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일상이라는 압력과 시간의 무게 눌려 금방 식고 단단하게 굳을 뿐. 그래서 잊고 살겠지. 그러나 기억을 조금만 더듬고 문지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보드라운 살결을 드러내는, 사랑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화석 하나씩은 누구나 가지고 산다. 그렇기에 아무리 진부해 보여도, 시시콜콜한 사랑 노래나 연애 드라마는 언제나 옳다. 너와 내가 사랑한 모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또 물어보면 낯간지러워도 작정하고 이야기 좀 풀어놔야겠다. 아빠랑 엄마도 그런 화석 몇 개는 가지고 산다는 걸. 20년 전, 대학로를 거닐다 그 해 첫눈 오는 날, 아내와 첫 입맞춤을 했다. 카페에 가면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몰래 숨어, 소위 뽀뽀 좀 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비록 '요즘도 뽀뽀 좀 하고 다니냐'는 질문에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답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다음에 아버지께 전화드리면 나도 이 질문은 좀 해야지.
"아버지. 엄마랑 뽀뽀는 좀 하고 다니십니까?"
# 당신의_일상에_의자_하나_놓기
# 편히앉아서_쉬다가세요
# foryourch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