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를 먹을 수 없었다

[의자 놓기_04] 엄마의 마음 (feat.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by 요셉


코로나 19 때문에 미국 방문 계획이 취소된 부모님이 연말에 소포를 보내셨다. 직접 들고 오셔서 바리바리 풀어놓으며 손주들 보고 싶으셨을 텐데. 정작 물건 주인들은 못 오고 물건들만 왔다. 손자 손녀들 장난감과 옷가지, 마스크와 먹을거리를 하나 가득 채운 택배. 외국 나와 사는 자식들은 하나 같이 다 자식 노릇 못하고 사는데, 연세 지긋한 부모님들 사랑은 다함을 모른다. 두 분 마음의 무게만큼이나 상자는 무겁다.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나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고 엄마에게 조잘거리기 바쁘다. 국물용 볶음용 멸치며 온갖 장아찌, 볶은 깨, 참기름, 김. 언제 이런 걸 다 싸셨나. 새심 하기도 하시지. 음식이 새서 아이들 옷이나 선물에 혹 샐까 봐 꼼꼼하게도 포장을 하셨다. 그리고 상자 맨바닥에 무심한 듯 수북이 쌓여 있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여섯 봉지. 꽁꽁 얼려진 채로 태평양을 건너왔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시거나 소포를 보내실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기억으로 내가 일곱 살 정도 됐던 거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으니까. 지금 흔하디 흔한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한국에 처음 나온 건 80년대 초반이었고, 보편화돼서 식탁 위에 자주 올라온 건 내가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었던 때였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엔 누구 하나 넉넉한 살림이 없었고, 월급쟁이 아버지와 삼 남매를 둔 엄마의 주머니 사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위로 네 살, 두 살 많은 누나들 도시락 반찬으로 한 번씩 밥상에 올라오던 소시지는 계란 옷을 입은 분홍 소시지였다. 물론 가끔 맛보는 분홍 소시지도 꿀맛이었지만, 엄마가 한 번씩 큰 맘먹고 사 오던 ‘비엔나 소시지’에 비길 순 없었다. 비엔나는 어딨는지 몰라도 소시지 맛으로 짐작컨대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라 생각했다.


줄줄이 이어 붙은 소시지를 떼어내 하나하나 칼집을 두 번 넣고, 달궈진 기름에 넣는다. 참을 수 없는 냄새다.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 소시지 하나만!” 어느새 입 안에 쏙 들어와 있다. 어묵처럼 힘없이 끊기는 챔피언 소시지 하고는 비교를 거부한다. 탱글 하게 씹히면서 가공육 특유의 향과 기름이 입 안에 퍼져나간다. 케첩에 듬뿍 찍어서 한 입 베어 물고, 밥 한 숟가락 뜨다 보면 세상에 이런 맛이 없다. 허나. 방심은 금물이다. 소시지는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다. 어린 나의 소박한 소원. 소시지 한번 원 없이 먹어 보는 거.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결국 이 줄줄이 소시지 때문에 사달이 날 것을. 주공 아파트 우리 앞집에 세네 살 배기 어린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엄마는 한참 어린 아줌마를 따뜻하게 잘 챙기셨다. 지금이야 앞집 윗집 아랫집과 아파트 단지에서 왕래가 뜸하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허물없이 지냈다. 여름에는 집집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다녔고, 없는 살림에도 서로 나누는 정이 깊을 때다. 한 여름 더위는 한 풀 꺾인 어느 날 저녁 즈음. 앞집에 엄마랑 놀러갔다가 엄마도 슬슬 저녁 준비하러 일어나는 차였다. 그때 아줌마가 갑자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후다닥 프라이팬에 무려 비엔나소시지를 굽기 시작했다.


“아줌마. 이거 얼른 구워서 애 밥 먹여서 보낼게요.”

“아니에요. 그러지 마. 나도 지금 가서 저녁 할 거야.”

“그래도요. 우리 애도 밥 먹일 거라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른 가자. 나와.”


나를 채근해 데려 나오는 엄마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나는 절박했다.


“엄마. 나 소시지 하나 먹고 가면 안돼?”


엄마의 눈빛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제발 엄마 체면 좀 지켜줄래? 좀 부족하게 살아도 다른 집에 와서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소시지 하나 맘껏 먹이지 못하는 엄마는 만들지 말아 줄래?소시지 하나만 달라는 말은 나한테만 해주면 안 되겠니?’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소시지의 유혹은 강렬했다.


“엄마! 나 하나만 먹고 갈게. 응?”

“네. 아줌마 그렇게 하세요.”


엄마는 끝내 신발을 구겨신고 문을 열고 나가며 최후의 배수진을 쳤다.


“너 그거 먹으면 오늘 집에 못 들어오는 줄 알아!”


이쯤 되면 그만 포기했어야 했다. 그때 상황을 정리하고자 아줌마가 얼른 구워진 소시지를 한 개 집어 들고 내 입에 넣었다. 무안하게 엄마를 바라보며 입에 들어온 소시지를 씹는 순간, "쾅" 소리를 내며 우리 집 대문은 빛의 속도로 잠겨 버렸다.


“엄마. 문 열어줘. 엄마. 아앙.”


소시지는 입 안에서 다 삼켜지지도 않았는데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닫힌 대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당황하던 아줌마와 이 문이 진짜로 절대 열린 것 같지 않은 다급함. 거의 30분 넘게 아무리 대문을 두드려도 엄마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영겁의 시간이었다. 이윽고 문은 열리고, 엄마는 내 등짝을 세게 때렸다. 저녁은 고사하고, 눈이 퉁퉁 불어 울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전날의 어색함과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버무려진 아침 공기였다. 그 날은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가 내 잠을 깨웠다.


“아들 밥 먹자.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잤다며. 배고프겠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상에 둘러앉아 우리 다섯 식구는 밥을 먹었다. 모든 것이 똑같은 아침이었다. 단 나보다 더 부어 있던 엄마의 눈두덩과 온갖 종류의 햄과 비엔나소시지가 밥상 중앙에 수북이 쌓여 있던 것만 빼면. 그 전날 나를 애타게 바라보던 엄마 마음을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침 밥상에 산더미처럼 올라온 소시지가 절절한 엄마의 마음이란 건 일곱 살 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그 밤에 언제 나가서 이 많은 소시지를 사 왔으며, 시장을 오고 가는 그 길에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시지를 원 없이 먹고 싶다는 나의 소박한 꿈이 이뤄진 그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소시지를 먹을 수 없었다. 그 전날보다 더 크게 울고 싶던 아침. 말없이 내 밥 위에 소시지를 올려주던 엄마.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한국에서 보내주신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는, 어색했던 그 날 아침 밥상으로 나를 번번이 데려간다. 손주들 먹이라고 소시지를 싸서 보내는 엄마의 마음속엔 나와 같은 기억과 애잔함이 교차하는 걸까. 아내가 저녁 식탁에 줄줄이 소시지 한 봉지를 다 구워서 올린다. 미국 마트에도 햄과 소시지는 종류별로 넘쳐나지만 익숙하고 오래된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엔 비길 것이 못된다. 귀신같은 아이들 입맛. 밥 한 공기를 다들 뚝딱 해치운다.


“엄마 소포 잘 받았어요. 무슨 소시지를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애들이 좋아하네. 잘 먹을게요.”

“아들도 많이 먹어. 소시지 좋아하잖아.”


그 날의 기억이 우리 둘 다 비엔나소시지 마냥 줄줄이 타고 올라왔지만, 누구 하나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 놈의 줄줄이 소시지는 마음 편하게 먹질 못한다. 왜 먹을 때마다 코끝이 이렇게 찡하고 간질간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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