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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서 Mar 08. 2023

[앨범 리뷰]Tom Misch-Geography

한낮의 햇빛을 닮은 음반


미국에서 건너온 'Chill'은 어느 순간 반짝하고 나타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하더니

이젠 그다지 새롭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Chill Vibes'와 같이 음악과

함께 주로 쓰였는데, 지금도 유튜브에선 'Chill'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너무 많이 쓰여 헤질 대로 헤진 단어이지만 Tom Misch의 데뷔 앨범이자 첫 정규 앨범인 'Geography'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재즈, 디스코, 힙합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이 음반은 가만히 앉아 듣기 어려울 정도로 둠칫둠칫 박자를 타게 만드는 그루브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힘이 잔뜩 들어있던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주는

'Chill'한 매력도 갖고 있다.

음식으로 묘사하자면 여러 가지 나물이 한데 어울려 깔끔하면서 산뜻한 맛을 내는 산채 비빔밥일 것이고, 인생의 어느 한순간으로 묘사하자면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돗자리에 누워 멍 때리는

기분 좋은 토요일 오후일 것이다.


이 음반을 발표하기 전 그는 수년간 'Sound Cloud'에 부지런히 믹스테이프와 여러 트랙들 그리고 EP 등을 작업해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천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나온 데뷔 앨범 'Geography'에는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탐구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첫 트랙 <Before Paris>는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Roy Hargrove'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돈을 벌거나 직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음악가를 선택한다면 그건 틀렸어.
이 일은 사랑하기 때문에 해야 돼.
당신이 빈털터리라도,
반드시 하게 될 만큼.'


앞으로 자신이 걸어 나갈 드넓은 음악 세계에 정식으로 발을 내딛기 전 세상에 선언하는 듯한 자기 암시적인 이 독백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Lost in Paris>는 통통 튀는 기타 리프가 매력적인 곡으로, 작업물이 담긴 드라이브를 파리에서 잃어버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이렇게 파리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자식같은 작업물들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South of the River>에선 평생 살아온 고향이자 음악적으로 깊은 영감을 받는 런던 남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표출하기도 한다.


여동생의 극적인 독백으로 시작되는 <Movie>는 멜로 영화를 선율로 표현한 듯한 잔잔한 발라드곡으로, Patric Watson의 곡을 좀 더 느릿하고 포근한 재질의 기타 리프와 바이올린으로 리메이크 한 <Man Like You>와 함께 앨범 내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트랙이다.


한여름의 싱싱함을 담은 듯한 경쾌한 멜로디가 매력적인 <It Runs Through Me>,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스럽게 잘 풀어낸 <Isn't She Lovely>, 펑키한 베이스 라인이 매력적인 디스코 곡 <Disco Yes>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연스러우며 리듬을 타게 만든다.


<Water Baby>에선 그의 오랜 음악 파트너 Loyle Carner의 느린 랩이 재지한 멜로디에서 자연스럽게 유영하며,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살 거라는 톰 미쉬의 조용한 다짐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뒤이어 잔잔하게 흐르는 <You're On My Mind>, 리드미컬한 밝은 곡인 <Cos I Love You>를 지나

몽환적인 멜로디에 대조되는 세련된 비트가 인상적인 <We've come so far>까지.

Tom Misch는 적당한 속도로 부드럽게 자신만의 그루브를 완성시켰다.


chill한 분위기를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겠지만, Tom Misch의 곡들에선 한낮의 햇빛 같은 여유로움이 넘실거린다. 그가 말한 '잿빛을 햇빛으로 만드는 그루브' 안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다보면 어느새 한결 가벼워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달까. 기분이 좋지 않은 날 혹은 전혀 기대되는 게 없는 그저 그런 하루에 이 음반을 들으며 약간의 여유를 가져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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