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외딴섬 이니셰린에 사는 파우릭과 콜름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가 아는 친한 친구다.
아니, 친한 친구였다. 콜름이 일방적으로 절교 선언을 하기 전까지.
하룻밤 사이에 콜름은 파우릭이 싫어졌다며 더 이상 말을 걸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한다.
갑자기 쌀쌀맞게 변한 파우릭을 이해할 수 없는 콜름은 이유라도 들어보자고 하는데,
'너는 지루한 사람이야. 앞으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의 한심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들어줄 시간이 없어' 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답만 돌아온다.
크게 하는 일 없이 파우릭과 펍에 가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콜름은 파우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충격을 받는다.
동생과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말 멍청한지 물어보고, 동네에서 바보 취급받는 도미닉과
어울러도 보지만 무엇을 해도 파우릭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콜름은 파우릭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의 곁을 맴돌지만,
결국 파우릭의 화만 돋우고 한 번만 더 나에게 말을 걸면 손가락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파우릭과 콜름은 이니셰린이라는 작은 섬에 사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 공통점을 찾기 힘든 사이다.
파우릭은 그의 집에 있는 여러 이국적인 소품이 보여주듯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바이올린으로 작곡을 할 줄 알며 그와 함께 음악을 하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음대생 무리도 있다.
반면 콜름은 '정곡'이란 단어를 몰라 동네 최고 바보인 도미닉에게 설명을 듣는 시골 촌뜨기다.
하나뿐인 여동생 없이는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하는 그는 좋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똑똑하거나 재미있는 타입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파우릭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처럼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해서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파우릭에게 삶이란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의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면 그뿐이다.
둘의 갈등은 콜름이 가장 아끼던 당나귀 제니가 파우릭이 잘라 던진 손가락을 먹고
죽게 되자 복수심에 불타오른 콜름이 파우릭의 집을 불태우면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콜름과 파우릭은 상대방이 가장 아끼는 것을
실수로 혹은 고의로 빼앗으면서도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고 원망하지만은 않았다.
파우릭은 경관에게 맞아 정신을 못 차리는 콜름을 일으켜주고 대신해서 마차를 끌어줬으며,
콜름은 파우릭의 집을 불태우기 전 그의 강아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껏 보살펴줬다.
미움과 증오로 꽉 찬 마음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친절과 배려의 작은 틈을 남겨둔 두 사람이
결국 갈등으로 모든 것을 잃은 모습은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의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기 직전인 1923년 4월이다.
상대방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큰 상처를 주고받는 파우릭과 콜름의 모습에서
한때 뜻을 같이 한 동지였으나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대한 의견차로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아일랜드인들의 비극적인 역사가 겹쳐진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일어난 작은 다툼이 결국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잃게 만드는 전쟁으로 변하는 모습은 아일랜드의 비극만으로 국한될 것은 아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인류사의 어두운 면모를 파우릭과 콜름이라는
두 인물의 개인사로 치환시킴으로써 전쟁이 갖는 아이러니와 비극성을 극대화시켰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피식 웃게 되는 장면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 마치 하나의 교훈이 담긴 우화를 눈으로 감상하는 거 같다.
아카데미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아쉽게 무관으로 끝난 이 영화는
콜린 파렐과 브렌든 그린슨의 명연기와 주인공들의 답답한 상황과 대비되는
탁 트인 멋진 아일랜드 풍경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