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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스타 Mar 21. 2024

미용사가 겪는 문제를 다루는 스타트업은 없나요?

제겐 파괴왕 친구가 있습니다. 마치 주호민 작가가 제대한 부대가 없어지고 다니던 대학의 학과가 없어진 것처럼, 이 친구가 취업하려고 하는 업계마다 망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조선공학 공부를 마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시기에 우리나라 조선업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그나마 '조선'이라는 두 글자를 살려 해운회사에 사무직으로 들어갔지만 바로 뛰쳐나왔고, 스튜어드를 준비합니다. 몇 년간의 훈련과 수차례의 도전 끝에 모 외항사의 최종 면접에 합격했습니다. 발령 날짜를 기다리던 중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 외항사의 한국 노선 신설 계획은 없던 일이 됐고, 자연스럽게 스튜어드 합격도 없던 일이 됐습니다.

어느덧 파괴왕의 나이는 20대 후반이 됐습니다. 파괴왕은 이번에 발 들이는 업계마저 파괴돼선 안 된다는 일념 하에 절대 망하지 않을 산업과 직종을 찾았고, 웹퍼블리셔와 미용사(헤어 디자이너)를 두고 고민하다 미용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머리카락이 모두 없어지지 않는 한 미용 서비스업은 망하지 않을 테니까요.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 미용 일에 적응한 구 파괴왕 현 미용사 친구에게 일은 재밌는지 물었습니다. 재밌다고 하더군요. 언제 미용실을 차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직 성장할 단계가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서 한 번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용 일을 시작하려면 일단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에 인턴으로 취업해야 합니다. 인턴이 초급 디자이너가 되려면 업계 관행에 따라 3~5년간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도제식 교육을 받고, 최종적으로 미용실 사장님에게 실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초급 디자이너가 다음 단계로 성장하려면 손님을 많이 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만의 시그니처 기술을 만들어야 하고, 본인이 미용실을 옮기면 함께 따라올 고정 고객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초급 수식어를 뗀 디자이너는 매출을 월 500만 원씩 많게는 월 1,000만 원 이상 꾸준히 내면서 본인의 영향력을 키워야 합니다. 영향력이 커져서 미용실이 디자이너를 미처 다 담지 못할 때, 디자이너는 내 미용실을 차리기 위해 일하던 미용실을 떠납니다. 초급 디자이너인 제 친구는 아직 갈 길이 멀긴 머네요.






미용사는 일하기 좋은 미용실을 찾기 어렵다

미용사가 성장을 잘하려면 좋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마치 직장인이 성장을 잘하려면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유리하듯이 말이죠. 제 친구는 시작이 늦었으니 좋은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안타깝게도 미용사는 일하기 좋은 미용실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미용실과 미용사는 업무 위탁계약(프리랜서)을 해서 근로 기준이 없습니다. 미용사가 미용실에서 하는 일이 큰 틀에서 정해져 있다 보니 근로 기준이라고 불릴만한 업계의 상식 같은 내용은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 미용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두 번째로 미용실이 미용사에게 일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를 잘 알리지 않습니다. 잘 알리지 않는 정보는 대표적으로 임금 공제와 교육 내용과 같이 미용사가 구직 단계에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미용사는 본인이 만든 매출을 미용실과 쉐어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인센티브라고 부릅니다. 인센티브 비율이 30%라고 하면, 미용사가 100만 원 매출을 냈을 때 임금으로 30만 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미용사는 30만 원보다 적게 받습니다. 미용실이 미용사에게 임금을 지급하기 전에 소득세, 결제 수수료, 교육비, 재료비 등을 공제하기 때문입니다. 미용실마다 공제 항목과 금액(또는 비율)은 다 다르기에 취업 전에 미용사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데, 일련의 내용을 미용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미용실을 찾기 힘듭니다.

인턴과 초급 디자이너까지의 미용사는 초급 수식어를 완전히 떼기 전까지 도제식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용실에 교육비를 지불(정확히는 임금에서 공제)하고 교육을 받습니다. 미용사는 이점 때문에 프랜차이즈나 규모 있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커리큘럼, 평가 기준, 피드백 등 체계를 갖추고 성실하게 교육을 운영하는 미용실을 찾기 힘들고, 미용사에게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미용실을 찾기도 힘듭니다. 사실상 미용사는 구직 단계에서 구체적인 정보 없이 감과 느낌으로 구직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죠.



미용실은 왜 정보를 알리지 않는가?

미용실이 정보를 알리지 않는 것은 미용 서비스 업계의 오랜 관행입니다. 미용실에서 '기장 추가'라는 말을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때 미용실은 손님에게 정확한 서비스 가격을 알리지 않았죠. 미용실이 손님에게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가격 정보를 알리지 않듯이 미용사에게 임금 공제, 교육 내용 등 구직할 때 필수적인 정보를 알리지 않습니다.

관행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우선 미용실은 사실상 미용 서비스 이외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없습니다. 그리고 미용 서비스가 어느 수준 이상이라면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 가치는 엇비슷합니다. 미용실이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는 거죠. 이 와중에 우리나라에 미용실은 너무 많습니다. 전국에 약 13만 개가 있는데, 이는 전국에 있는 편의점과 치킨집을 합친 수보다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미용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정보를 숨기거나 알리지 않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방법이 통했던 이유는 정보의 양이 적은 사람의 입장에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미용실 아닌 곳에서 머리를 자를 수 없기에 이러나 저러나 미용실에 돈을 써야 하고, 미용사는 미용 일을 하지 않으면 미용 서비스 업계를 떠나 아예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관행이 이어지는 동안 미용실보다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미용사는 구직 단계에서 직, 간접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는 인턴은 열정페이를 요구받고 있고, 경험이 필요한 초급 디자이너는 본인이 제공한 용역보다 적은 보상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용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저는 이 이야기에 대해 제 친구뿐만 아니라 여러 미용사들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감했고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도 갖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스스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찾기에는 현재 미용실에서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용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구직 단계의 문제를 해결할 계획입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미용 서비스 업계의 해묵은 관행으로 인해,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일할 기회가 필요한 사람에게 손해가 대물림되기보다 모든 미용실과 미용사가 win-win 하여 함께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나아가서 미용실이 손님의 용모가 단정해지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미용사가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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