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봉은 내 노동의 대가잖아요.
안녕하세요 기획 일을 하는 원스타입니다. 브런치에 요즘 일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 말을 듣고 바로 제 생각을 일장연설하고 싶었으나, TPO에 맞지 않아 말을 아꼈습니다. 대신 여기에 그때의 생각을 마치 마술사가 입에서 만국기를 꺼내듯이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채용이라는 것을 회사가 일을 해줄 직원을 뽑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 하나의 포지션을 두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수요자는 회사고 공급자는 직원입니다. 포지션은 단순히 직무를 뜻하지 않습니다. 업무 형태 및 내용, 자격 요건, 위상, 맥락, 전망 등을 포함한 총체적 개념입니다.
채용시장에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이 해당 포지션을 사고파는 가격 즉, 연봉입니다. 회사의 수요가 직원의 공급보다 많으면 연봉은 올라가고, 직원의 공급이 회사의 수요보다 많으면 연봉은 내려갑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개발자가 있습니다. 3~4년 전, 코딩 열풍과 함께 신입 개발자 초봉 5천만 원이라는 키워드가 비개발 직군 직장인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죠. 이때 채용시장에 흡사 개발자 영입 전쟁이 벌어진 터라, 모 금융권의 SM(System Management) 회사가 개발자 유출을 막기 위해 연봉을 1천만 원가량 일제히 올린 케이스처럼 현직 개발자들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연봉이 올라갔습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공무원입니다. 공무원 공채의 경쟁률이 매년 1배수 이상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인재 영입을 위해 공무원의 보수를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규모에 의해 포지션마다 연봉의 선이 정해지고, 회사가 어떤 포지션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 채용시장에서 해당 포지션을 사기 위해 구체적인 연봉을 걸어놓습니다. 주식창에 매수를 걸어놓는 거나 당근에 '삽니다' 게시글을 올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딜이 성사되면 회사와 직원은 연봉과 일(노동)을 주고받습니다. 내 연봉은 이렇게 결정됩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려던 차, 다음 문장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에 비해 연봉이 너무 낮아요.
입안에 만국기가 아직 남았네요. 마저 꺼내보겠습니다. 위에서 상술했듯, 연봉은 열심히 일하는 정도와 무관하기에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연봉이 오르지 않습니다.
직원이 연봉을 올리려면 지금보다 희소한 포지션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직을 하거나 직무를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포지션을 구성하는 요소인 업무 형태 및 내용, 자격 요건, 위상, 맥락,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지금 포지션보다 직원의 공급이 적은 포지션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회사 입장에서 해당 포지션에 대체자가 없거나, 대체자를 채용하는 비용보다 현재 직원의 연봉을 올리는 게 저렴하다고 판단할 때 직원의 연봉을 올릴 것입니다. 직원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말이죠.
그렇다면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거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직원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회사는 월급을 밀리지 않는 것이 기본이듯이 말이죠. 직원이라면 누구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다만 연봉을 올리기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채용시장에서 일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사고파는 물건과 같고, 내 연봉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내 연봉이 3천만 원인 이유는 문방구에 볼펜이 800원인 이유와 같다고 말씀을 드려봤습니다.
P.S. 연봉 3천만 원과 볼펜 800원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냥 제목 지을 때 생각나서 썼습니다. 연봉 1억과 한라봉 2,000원이라고 바꾸어 읽으셔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