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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Dec 17. 2022

갈등은 깊거나 얕은 물 안

갈등의 깊이는 내가 만들고.



사방이 막혀있는 컵 안에 물이 차오른다. 겨우 숨을 내뱉으며 버텨보지만 계속해서 물은 채워진다.


그 물은 누가 내게 붓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분노가 일어 차오르는 물이다.

내가 질식해 죽을지언정 분노는 잘 가라앉지 않고 나를 해치는 게 나의 고집인데도 멈출 수 가없다.

갈등을 평생 피하면 좋겠지만 언제나 갈등은 인생에서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데

수많은 경험을 해도 나를 바꾸는 일이, 내 마음을 끊어 내는 일이 쉽지 않은 사바세계의 법칙에 따라 나 역시 늘 잠식되어 버린다. “귓등으로 들었어야 할 말을 마음으로 들었구나.” 지혜로운 친구의 말에도 어리석은 나의 마음은 이미 갈등 속에 깊이 파고들어서 가뿐히 빠져나올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온 힘을 다해 지켜야 할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나의 가치는 훼손되어 너덜너덜 해졌다.

아무리 구겨지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도 만 원짜리는 여전히 만 원의 가치를 하듯 구르고 굴러도 나의 가치는 여전히 그대로 일 텐데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 입으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이다.


유난히 부정적인 감정과 말에 취약한 나는 늘 갈등을 마주하면 방어적이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혀를 칼처럼 휘두를 때마다 본질보다는 말에 휘둘려졌다.

나는 또 이 깊거나 (실은 얕을 지도 모르는) 물에 푹 잠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 물은 깊어질 테지만 분노는 여전히 사거라 들지 않고 있다.


이게 나인걸 어떻게 하겠어.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을 일단 잠가 놓고 생각을 해보기로 한다.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은 감정을 이미지화해서 그것을 내려놓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물이 더 차오르기 전에 일단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당황하여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감정이 커지지 않게 진정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시간은 충분하니까. 조바심 내지 않고 일단은 내려놔 본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급급히 움직이고 서툴게 구는 대신에 내 마음부터 잘 챙겨 본다.

상대방을 쉽게 용서할 필요도 또 내 잘못이 전부가 아님에도 성급히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갈등이 무서워 피하거나, 내 화를 더 일으키거나 - 그렇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무덤덤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 내가 아는 갈등의 풀이법 중의 하나이다.

미움을 증폭시키지 않고 빠른 갈등해결에 매달리지 않아야 둘 사이의 작은 발전이 있을 거라 믿는다.


변하지 않을 거지만 작은 변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그 상대방의 마음도 고요해지면 그때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서 관계에서의 작은 기적들을

경험하게 되기라는 믿음을 가져보면서. 순간 물의 깊이는 얕아지고, 조금 더 숨쉬기 편해졌다.

두려움과 절망이 점차 빠져나간다. 출렁이는 물속에서 고요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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