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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Apr 21. 2023

지속

정말 좋아하는 일


지속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돈이나 명예에 미쳐 돌진하는 일은 지속한다 해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비뚤어진 형태의 아웃풋이 발생하기가 쉽다. 한동안 글쓰기를 접어 두고 비교적 쉬운 영어책 한 권을 여러 달에 걸쳐 매일 두 페이지씩 공부해 나갔다. 아침잠 많고 그 아침잠 못 이겨내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우리 가게의 브레이크 타임뿐이라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난 후,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기만 할 수 있는 방전된 상태의 밤 시간을 제외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탁 -착석하고는 전날 표시해 둔 오늘의 페이지를 펼쳤다. 초반 한 달 반 정도는 당장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구사할 듯 의욕과 에너지가 넘쳤다.


그래서 아직 책의 5분의 1도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법책이나 단어책 좀 더 어려운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책이 쌓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고양되는 상태의 초반이었다.


두 달이 지날 즈음 지나니 쉽게 느껴지던 기초 문법책이나 여행 회화 책도 머리에 들어 오질 않아 겨우겨우 초반에 구입한 책의 진도만 빼게 되었다.


책의 12페이지를 남긴 지금은 지난주만 해도 5일간 연속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로 핑계를 대며 덮어 두었다. 그렇다가 그제 다시 책을 펼쳤고 초반같이 달달 달 외우는 깊은 공부는 아닐지언정 전체적인 문맥을 파악하고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는 공부를 이어 나갔다.


무엇이든 지속하기 어려웠던 지난날의 나에게 후회나 책망보다는 오늘은 조금 달라진 모습을 선물해 준다.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그 원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지나간 경험들이 한곳으로 모여 나의 ‘때’를 만들어 준다고 믿고 있다.


7년간을 지속했던 밴드 생활이 비록 아쉬움으로 기억되었지만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밤을 새워서 연습을 하다가  주말이면 덜컹거리는 차에 실려 지방으로 공연을 다녔던 열정과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꽤 인내심이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일, 계속해서 나에게 도전의 허들을 제공하는 일 앞에서 나는 누구보다 저돌적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의 6가지 지문, 12장의 페이지를 남긴 시점에서 몇 달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본다.


처음보다 고작 한 뼘 자라난 실력이지만 그래서 아직도 하던 대로 엉성한 말 하기를 할 수밖에는 없지만 듣는 귀는 훨씬 늘게 되지 않았을까?


지난 몇 달간의 짧고 간단한 공부 습관으로 긴 호흡으로 걸어나갈 취미를 얻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작은 성과를 얻었다. 이런 것들이 조금씩 모여서 큰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잘 아는 나이가 된 것도 나에게는 희망적인 측면이다.


아이디어가 넘쳤지만 덜 신중하고 덜 계획 적이었던 어린 날들에 비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겁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더 신중하고 더 계획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뿔 킥을 매일 같이 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부족한 나라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어제와 마찬가지의 일을 반복하고 지속한다. 정말 그 일을 좋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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