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조바르 Jul 17. 2024

좋은 시간, 나쁜 여자(28. 또 다른 거짓말)

백수정의 공격에 김현경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회사 대표실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백수정. ‘남편만 철저하게 무너뜨리면 돼. 자기 딸인지도 모르고 관계를 한 걸 알게 된다면…. 후 훗, 죽고 싶겠지. 사는 게 지옥일 거야. 각오해 김정호.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은 대가야. 내가 젊은 남자를 만난 것도 결혼생활 내내 진심 어린 사랑을 주지 않은 당신 때문이야. 쇼윈도 부부로 사는 것도 지긋지긋해. 날 원망하지 마. 하지만 성주가 이번 일에 연루되면 안 돼. 절대 안 돼.’ 수정은 책상 위에 놓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 수정의 사무실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들어왔다. 두 남자는 비서의 안내에 따라 대표실로 들어가서 수정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수정은 창가에서 소파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최 탐정님. 이리 앉으세요.”

“네. 사모님.”

최 탐정과 실장은 나란히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수정은 비서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후 최 탐정을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보수를 두 배로 줄게요.”

“네. 그런데 아드님은 잘 해결된 거죠?”

“그래서 보자고 한 거예요. 둘이 만나는지 감시 좀 해주세요. 만약, 계속 만나면 플랜 B로 가세요. 헤어지는 계획…. 아시죠?”

“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미행부터 하겠습니다.”

“아들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그 애만 떼 내세요. 아들이 상처받지 않게.”

“사람 마음을 바꾸는 거라 그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배로 준다고 했잖아요.”

수정은 미간을 찡그리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최 탐정은 가지고 온 탐정활동 계획서를 수정 앞에 놓았다.

“사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단 활동 계획서를 만들었는데요.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네.”

“먼저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남편분에게 김현경의 존재를 알게 하는 계획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10시에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수정은 계획서를 읽어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추모공원에 현경이와 성주가 같이 가면 절대 안 됩니다.”

“네. 그전에 둘 사이를 확실하게 정리시키겠습니다.”

“그럼, 이지영의 딸이 김정호의 딸이라는 건 어떻게 알게 할 건가요?”

“김현경에게 친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겁니다.”

“어떻게요?”

“그건 믿고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네. 그럴게요.”

최 탐정은 나머지 계획을 설명했다. 수정은 마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된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정호. 날 원망하지 마. 어차피 네가 뿌린 씨앗이니까.’ 수정의 미소에는 비장함이 묻어있었다. 최 탐정은 그런 수정의 표정을 보며 ‘지독한 년. 나쁜 년. 천벌 받을 년. 내가 돈 때문에 하지만 너 같이 표독스러운 년은 처음 본다.’라고 속으로 말했다.

“뭐해요? 당장 실행하지 않고.”

“네. 우리는 입금되면 움직이거든요.”

수정은 핸드폰으로 500만 원을 계좌이체 했다.

“착수금 500 입금. 나머지는 성사되는 대로.”

“감사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최 탐정은 수정의 사무실을 나가서 미스 박에게 전화했다.

“김포 김현경 오피스텔로 5시까지 와. 오피스텔 맞은편 커피숍 알지?”

“네. 알아요.”

“착수금 받았고, 김현경 만나서 생부의 실체를 알려주고 김성주와 정리하게 만드는 것부터 할 거야.”

“네. 이동할게요.”     

[송도 캠퍼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는 현경. 강의실 앞에 성주가 서 있다. 

“현경아!”

“선배. 또 기다리고 있었네.”

“‘또’라니, 당연한 걸.”

“배고파. 맛있는 거 먹자. 오늘은 내가 쏠게.”

“야야, 천하의 자린고비가 점심을 산다고?”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현경이 한 발 앞서 걸었다. 그런 현경의 뒷모습을 보며 성주가 현경 옆을 지나 앞으로 가서 마주 보며 말했다.

“우리 공주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네. 그렇지? 내 눈은 못 속여. 누구야? 어떤 놈이 또 고백했어?”

“아니네. 온 학교에 소문나서 그 많던 추종세력이 다 어디로 갔는지, 참, 나도 궁금하네.”

“날 추종세력에 넣지는 마라. 난 추종세력 아니다.”

“그래? 그럼 선배는 뭐야?”

“뭐긴, 난 널 추앙해.”

“호호호 봐준다. 그 말 좋았어. 맘에 들어.”

“그럼 나 먹고 싶은 거 말해도 돼?”

성주는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나 빼고, 다.”

“하하하, 들켜 버렸네.”

“낙지 볶음밥 먹자. 아주 맵게.”

“너, 매운 게 당기는 걸 보니 뭐가 있네. 확실해. 맞지?”

현경은 성주의 팔짱을 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보이냐? 내 속을 훤히 뚫어보네.”

“그럼, 내가 사랑하는 공준데.”     

현경은 식당에서 낙지볶음밥을 주문한 후 성주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 손 차지?”

“괜찮아. 대신 내 손이 따뜻하잖아.”

“맞아. 선배 손이 따뜻해서 좋아.”

“현경아, 무슨 일이야. 말해 봐.”

현경은 성주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성주는 그런 현경의 눈빛을 보며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선배, 아니, 오빠. 잘 들어.”

“오빠? 듣기 좋은데.”

“그래, 이제 오빠라고 부를게. 그게 나도 좋아.”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오래 들여. 말해 봐.”

“아니야.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자.”

성주는 더 다그치지 않았다. 그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매콤한 낙지볶음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래. 맛있게 먹고 이야기하자.”

“고마워. 오빠.”

성주는 밥 위에 채소로 덮여 있는 그릇에 낙지볶음 한 주걱을 얹어서 현경에게 주었다. 그런 후 자기 밥그릇에도 낙지볶음 한 주걱을 넣어서 비비며 말했다.

“매운 거 잘 못 먹잖아. 괜찮겠어?” 

“어. 괜찮아. 오늘은.”

평소 같지 않은 현경의 표정과 말투에 성주는 그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말없이 식사를 마치자 현경이 차분하게 말했다.

“오빠. 우리 한 달만 만나지 말자.”

성주는 청천벽력 같은 현경의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왜? 갑자기?”

“사실, 어제, 오빠 엄마가 찾아왔었어.”

“뭐, 우리 엄마가? 왜? 무슨 말을 했는데?”

성주는 놀라움과 급한 마음에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난, 오빠랑 헤어질 마음 없어. 사랑하니까. 다만 한 달이라도 어머님이 하라는 대로 해줄 생각이야. 한 달 정도는 버텨 보겠는데 더는 안 되겠다는 거지.”

“작전상 후퇴?”

“그렇지. 나하고 오빠하고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돼. 아마 감시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가 봤거든. 그 사람들.”

“뭐? 감시하는 사람? 우리 엄마가 사람을 시켰다는 거야?”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그리고 잘 들어. 오빠를 불효자로 만들지 않고, 나도 당당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그렇게 해줘. 나 믿지?”

“그래. 믿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를 하지 그랬어.”

“아니, 그건 현명하지 못한 거야. 내가 만약 오빠한테 바로 전화했으면 오빠는 엄마한테 가서 대들었을 거야. 모자지간 이간질 시키는 것 밖에 안 돼. 어차피 우린 평생을 같이 갈 거야. 그 과정에 한 달은 아무것도 아니지.”

성주는 현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경이가 이 정도로 생각이 깊은 여자였구나!’ 

“그리고 오빠 엄마가 나한테 돈도 주셨어.”

“뭐? 돈을?”

“어. 5천만 원.”

“헉, 5천만 원? 아들 몸값이 그것밖에 안 돼서 실망인데.”

“그렇게 말하지 마. 나 한텐 큰돈이야. 어쩌면 내가 키다리아저씨한테 은혜를 갚을 수 있을 정도로.”

현경은 키다리아저씨에 대해 성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고아가 되어버린 자신을 후원해 주는 고마운 아저씨라고. 

“나, 그 아저씨 한번 보고 싶다.”

“그래. 나도 소개해 주고 싶어. 지금은 말고. 한 달 후에.”

“알았어. 네 말대로 해볼게. 이제 심각해지지 말고. 웃어라.”

“고마워 오빠. 내 말 이해해 줘서.”

“뭘, 근데 오빠라고 부르니까 좋다야.”

웃고 있는 성주의 얼굴표정과 달리 현경의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미간은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오빠,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좋은 시간, 나쁜 여자(27. 나쁜 여자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