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루키 May 02. 2024

"치매"가 온다는 건.

  우리는 늘 같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 매 순간 내 주변 공기조차 다른 향을 품으며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듣는 소리도 다르다. 인생 또한 정적이지 않으며 새로운 걸 추구하고 그로 인해 문명이 발전하여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삶이 멋있게 느껴지고 그에 따라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매 순간 새로운 삶이 아닌 그저 과거의 살아온 방식과 걸어온 방향대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허울 좋게, 그리고 감성적이게 ‘치매’라는 질병은 나이를 거꾸로 먹어 점점 나를 아기로 만드는 시간이라 일컷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복잡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어려운 세상에선 다 큰 아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물고 살아가기 어렵다.




  약국에 항상 보던 손님이 갑작스레 치매를 진단받으시고 다달이 상태가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분이라 조금 충격적이었다. 손님과 딱히 접점이랄 것도 없고 매번 본인 약만 조용히 타가는 분인데도 다른 만성질환과 다르게 치매는 점점 신경이 쓰였다.


  증상이 점점 심해져 그로 인해 본인 댁에 무사히 잘 들어가셨을지, 가다가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을지, 약은 어디 떨어뜨리지 않고 잘 들고 가셨을지.. 등 무수한 오지랖과 나쁜 상상을 펼쳤다. 그러다 잊힐 때쯤 다음번 약 타러 방문하시면 반가움과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약을 잘 챙겨드린 다음 다시 한번 걱정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분이 정말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모습이 보았다. 때가 되면 오시는데 매번 같은 건물의 다른 병원을 들러서 다른 약의 처방전을 가져오시는 게 아닌가. 매우 점잖으신 분이라 아마 다른 병원에서도 별다른 의심 없이 약을 처방해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의심스러워 조심스레 “혹시 오늘 00과(병원)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어보면 그조차도 헷갈려하시는 정도였다.

 그 짧은 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처방전 그대로 조제를 해드릴지, 잘못 오신 거 같다고 말씀드리고 돌려보낼지. 만약 손님이 내 오지랖에 기분이 나쁘셔서 다른 약국으로 가신다 하면 약 이력을 모르는 다른 약국에선 그대로 조제할게 분명하니 그것도 좀 아닌 거 같았다.


  손님에게는 작은 메모지에 0층 00 병원을 적어드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전달해 드렸다. 오늘 병원을 잘못 다녀오신듯하니 다시 다녀오시라고. 다행히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다시 다녀오시고 고맙다고 인사하시며 제대로 약을 타가셨다.


  치매는 슬프다.

  잊힌다는 게 어떤 관점에서는 축복일지도 어떤 관점에서는 형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살아왔고 내가 치열했든 설렁설렁했든 나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사가 점점 희미해지는 건 서글픈 일이다.


  약국에 오시는 많은 노인 환자들은 치매를 대단히 걱정하신다. 내가 요즘 깜박깜박하는데…, 요즘 치매에 이런 약이 좋다는데…, 누가 치매예방에 이렇게 하라고 하던데… 등등


  희한하게도 그들의 걱정의 끝엔 나의 치매가 나의 서글픔이란 것보다도 나의 질병으로 인해 가족에게 짐이 될까 두렵다고 하신다. 그래서 “갈 때 되었는데 빨리 가야지~” 하고 농을 던지신다.


  나도 치매와 같은 질병에 걸리면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두렵다.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자기 전 새까맣고 적막한 천장을 바라보며 만약에를 생각한다면 짐이 되는 것보다 나라는 존재를 내가 인지 못하는 게 조금 더 두렵다.


  가끔은 삶이 무척이나 고될 때 내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에서 스파이더맨은 어떤 선택으로 인해 세상의 존재로부터 지워지길 바란다. 히어로 영화는 오락적인 요소와 판타지 요소가 강해서 액션과 스토리에 집중을 하는 편이지만 유독 스파이더맨과 관련된 영화는 주인공 감정에 공감을 하게 되는 편이다. 영화 속에서 고독한 스파이더맨을 보고 있자면 내가 생각한 ‘세상에서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건 얼마나 더 외롭고 얼마나 더 고독하고 힘든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길게는 연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짧게는 일주일, 그리고 어제의 좋았던 경험으로 오늘을 다시 만들곤 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서 갑자기 작년의 오늘엔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나와서 그걸 들여다보면 내가 작년엔 무슨 옷을 입고 어디를 갔는지, 작년과 비교한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보게 된다. 참 똑똑한 세상이다. 사진 속 나는 항상 웃고 있고 즐거워 보인다. 찡그리고 화난 채로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스마트폰엔 항상 좋았던 기억만 남겨져있다.


  치매라는 질병은 아직도 원인불명에 인류가 극복해내지 못한 과제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와 건강관리를 하더라도 내 의도와 관계없이 질병이 찾아온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근소한 미래에 치료법이 개발될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기억과 경험을 많이 쌓아서 비록 조금씩 사라질지언정 좋은 기억이 너무 많이 남아 나를 행복하게 계속 내버려 두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을 여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