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작가의 글
이력서를 몇 통이나 보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습니다.
열심히 쓴 문장은 어디로도 닿지 않았고, 보내는 족족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메일함은 조용했고, 마음도 그만큼 텅 비어갔습니다.
불합격이라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세상은 저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고 느끼며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습니다.
집에 쌓인 쓰레기를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길.
그날따라 마음속에는 특히 무겁고 무성한 감정이 엉켜 있었습니다.
막막함, 불안, 쓸쓸함, 또 막연한 체념 같은 것들.
그 감정들이 ‘분리수거’처럼 분류되어 버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부스럭—”
봉투 틈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작고 여린 생명이 있었습니다.
작은 비닐 위에서 터진 울음 하나가 제 안의 굳은 무언가를 조용히 깨트렸습니다.
“냐아—”
그 한순간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아주 선명한 책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이 아이를 도와야 해.’
그 단순하고 분명한 생각은 처음으로 제 마음을 확실히 움직였습니다.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밤, 저는 오랜만에 내일을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는 처음엔 트롤리 밑에 몸을 숨기고 방 안의 온도를 낯설게 느꼈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나아갔고,
식탁 위로, 키보드 위로, 세상 곳곳을 향해 호기심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경계하던 눈빛은 어느새 나를 찾는 시선으로 바뀌었고, 함께 먹고, 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공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품었던 마음보다
그 작은 존재가 제게 주는 위로가 훨씬 더 깊고 넓다는 것을요.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서 낮잠을 자던 모습,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
낮은 울음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잊고 있던 삶의 기척을 다시 제 안에 불러냈습니다.
그 기척을 따라 저도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함께한 계절은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을 지났고, 이제는 익숙하고도 따뜻한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와 작은 생명이 함께 걸어온 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무심코 지나친 온기가 사람을 어떻게 살게 하는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나날이 어떤 모습일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괜찮다’고 말해줄 단 한 존재만 곁에 있어도 삶은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을요.
그러니 이 이야기는 어쩌면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지나치던 날들 속에 문득 찾아온 기척 하나가 얼마나 오래 깊게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지.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설레면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어느 날, 당신 곁에도 그런 온기가 다가오기를.
그리고 그 온기가 당신을 조금 더 살게 해주기를.
이건, 결국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그 모든 시작이 되어준 너에게.
보리야, 와줘서 정말 고마워.